울산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 안종준 진료부원장은 울산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한 지 만 21년 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내과 전공의 및 호흡기내과 임상강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 3월 울산에 내려온 후부터다. 그가 속에서 꺼낸 이야기는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낸 만큼 진득하고 깊다.

글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처음 주어진 중환자실 전담의 역할

안종준 진료부원장이 처음 울산대학교병원 호흡기내과에 합류했을 때만 해도 지금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시 호흡기내과에는 지금은 이직한 이기만 교수와 안종준 교수 둘뿐이었다. 안종준 진료부원장은 중환자실 진료에 더 집중해 진료를 시작했다.

“둘이서 세부 전문분야 진료를 나누어 할 수는 없었기에 전체 호흡기 질환 환자를 구분 없이 진료했습니다. 당시 병원에 내과계, 외과계 중환자실이 각각 있었는데, 저는 내과계중환자실을 맡아 관리했습니다. 제 후임인 강병주, 김진형 교수가 부임할 때까지 15년 이상 중환자실 실장을 하면서 중환자실 진료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또 전공의들에게 중환자의학에 대한 개념을 심어 줄 수 있어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중환자실 전담의’ 제도가 확립됐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 중환자의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상황이어서 부울경 지역은 물론 아마 지방 대학병원에서 중환자실 전담의 역할을 한 첫 의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2019년부터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의 진료부원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공공의료본부장, 국제진료센터장 등도 그가 함께 담당하는 역할이다. 공공의료본부장은 올해 초 정부에서 지정하는 권역책임의료기관에 선정되면서 맡은 당연직이다. 사업 특성상 원내 많은 부서, 원외 기관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이유로 진료부원장이 본부장을 맡아야 한다. 국제진료센터도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려면 유관 부서가 협력해야 하므로 전임 부원장부터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울산광역시에서 울산대학교병원에 위탁한 울산광역시 감염병관리지원단 단장직이다. 안종준 진료부원장은 요즘 “능력에 비해 많은 직책을 맡은 내가 제대로 역할은 하고 있나” 하고 반문하며, 시간이 무척 빠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절감하며 지낸다.

이미 오래전 일이지만 그에게 선명하게 각인된 환자는 중환자실의 기억이다. 그가 울산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 지 2~3년 지났을 무렵이다.

“당시 30대 젊은 환자가 급성호흡곤란증후군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오랫동안 인공호흡기 등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호전해 퇴원을 했습니다. 이 환자가 특히 기억나는 이유는 혈압을 유지하려고 사용하는 승압제를 통상 용량보다 수십 배 이상 사용하는 상황에서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대개 환자가 사망하는데, 당시 전공의였던 한동화 선생이 며칠간 환자 곁에 붙어 전력을 다한 덕에 호전되었습니다. 한동화 선생을 칭찬하고 밥을 샀던 기억이 나네요.”

보람과 고충도 중환자실 사례를 떠올린다. 진료 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의사라면 누구나 그렇듯 환자 상태가 좋아졌을 때이고, 귀한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 만큼 큰 고뇌가 따르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중환자실 치료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많은 난관을 넘어야만 회복을 경험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모두 극복한 환자를 외래에서 다시 만나면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울산대학교병원에 와 2~3년까지는 퇴근 후 문득문득 그날 중환자실에서 봤던 환자가 떠오르고 ‘지금 환자 상태는 어떨까’ 하고 걱정을 했습니다. 잠을 설치는 등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나날이었죠. 이런 상태가 몇 달 이나 지속됐는데, 다행히 저절로 증상이 사라지더군요.”

감염병 속 함께라는 것

가뜩이나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는 안종준 진료부원장이지만 여기에 ‘비상진료 TF 단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하나 더 맡았다. 울산대학교병원은 지난해 초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부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그는 ‘비상진료 TF 단장’을 맡아 병원 안팎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여기에는 울산대학교병원 많은 직원의 노력이 곁들여 있고 그는 이를 잘 알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코로나 유행 초기에는 병원에 음압 중환자실이 없어서 일반병동인 81병동에서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중환자실 장비를 가져와 집중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81병동 간호사들도 고생이 많았지만, 중환자실에서 지원을 온 간호사들, 강병주·김진형 교수가 특히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초기에는 의료진의 감염을 막아주는 전동식 공기정화 호흡기(Powered air-purifying respirator, PAPR)가 부족해 애를 먹었지만, 구매팀의 노력과 울산시의 도움으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울산에는 울산대학교병원이 코로나19 환자 진료를 전담하기 때문에 확진 환자뿐 아니라 자가격리자, 의심 환자 모두 이곳으로 전원됩니다. 여러 차례 매스컴에 보도된 코로나19 환자의 분만, 수술 등 어려운 진료에 몸을 사리지 않은 진료과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최근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면서 병상 부족에 대응해 울산시와 울산대학교병원은 생활치료센터를 추가로 개소했다. 울산대학교병원은 올 초 울산광역시에서 울산 지역 코로나 확진 환자가 생활할 생활치료센터를 준비할 때부터 많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 울산의 의료 환경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양남 현대자동차 연수원에 첫 생활치료센터를 열 때부터 울산대학교병원이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당연히 초기 개소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다. 울산 내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가 집단 발병하면서 울산대학교병원에 많은 환자가 전원되어 여러 면에서 병원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 생기는 생활치료센터인 만큼 의료진 배치 결정부터 센터에서 사용하는 처방 약 준비, 수기로 작성해야 하는 환자 진료기록, 환자 정보 처리 등 모든 부분이 난관이었다. 하지만 울산대학교병원 임직원은 똘똘 뭉쳐 이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갔다.

“운영을 시작한 이후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는 파견 나갔던 우리 팀장님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풀어 나갔습니다. 불과 2주 만에 전산팀에서 생활치료센터 전용 환자 관리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적용하고, 이때 우리가 구축했던 시스템은 양남 생활치료센터를 타 지역 대학병원에 이관할 때 관계자들의 놀람과 부러움을 샀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양산에 부산·울산·경남 권역 생활치료센터를 열 때도 진료와 관련한 모든 시스템을 우리가 구축하고 몇 개월간 안정적으로 운영하다 양산부산대병원에 운영을 이관했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이 운영하는 울산 권역 내 생활치료센터는 입원 환자, 중환자 진료까지 모두 연계해서 운영하므로 코로나19 환자 진료 면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된다. 생활치료센터에서 환자 상태가 변화하면 곧바로 현장 의료진이 호흡기내과 교수들과 논의하고, 필요하면 병원으로 신속하게 전원하므로 매우 안전하고 효율적이다. 또한 환자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을 때는 특수음압 중환자실로 이송하여 중환자실 전담의가 즉시 진료한다. 안종준 진료부원장은 이런 진료 시스템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걱정도 앞선다.

“지금 운영 중인 울산 생활치료센터 2곳(기장, 삼산)은 울산대학교병원이 책임을 맡고 있지만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제한적인 인력으로 계속 운영하기에는 부담이 많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지만 생활치료센터 통합 등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울산시와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병원이 코로나 격리 병동을 많이 운영하다 보니 비감염 중증 환자 진료에 차질이 많이 생겨 해당 환자나 담당 교수님들의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입원병실이 없어 매일 수십 명 환자의 수술, 항암치료가 지연되는 상황이 속출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병원 안팎으로 충만해지는 일

울산대학교병원에 대한 안종준 진료부원장의 사랑은 남다르다. 병원의 발전과 성장 과정에 진심으로 관여하는 그이기에 병원이 집이고 직원들은 가족 같기만 하다. 그는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환자가 더 이상 서울의 병원에 갈 이유가 없다고 자신한다. 어떤 면에서 울산대학교병원이 훨씬 뛰어난 점이 있다는 말이다.

“십여 년 전, 우리 병원이 ‘전국 8대 병원’이라는 슬로건을 걸었을 때 모든 사람이 단순히 목표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저도 당시에는 ‘과연 가능할까’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모두가 노력한 덕분에 ‘전국 8대 병원’에 준하는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이제 우리 병원은 단순히 울산 내 유일한 대학병원, 상급 종합병원이 아니라 수도권을 제외한 대학병원 중 가장 상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의 위상, 진료 수준은 우리 직원, 울산시민 모두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그는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면서 울산대학교병원의 역할과 위상이 많이 올라갔다고 여긴다. 과거에는 울산대학교병원이 가진 역량만큼 평가받지 못했다면 지금은 시민이나 시 관계자에게서 “울산대학교병원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환자 만족도 조사에서 전국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만족도 높은 병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안종준 진료부원장은 대학 시절 등산을 즐겨 여름방학에는 지리산 종주, 겨울방학에는 설악산 종주를 여러 차례 했다. 틈날 때마다 동기, 후배 들과 전국 국립공원을 등산하고 병원 근무를 하면서는 병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 몇 년간 경주벚꽃마라톤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10년 전 무릎을 다쳐 연골제거수술을 한 뒤 마라톤 참가는 쉽지 않다. 2000년대 울산대학교병원에는 전국 대학병원에서 보기 힘든 의사축구회도 생겼는데, 그는 축구회 총무를 맡아 몇 년간 전국 대학교수 축구대회에 여러 번 출전했다. 그는 지금도 일상에서 운동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회원들이 노쇠해지면서 축구회 활동이 뜸해졌지만 아직 동호회를 유지하고 있고, 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중년이 되니 10년, 20년 뒤 모습을 생각하면서 운동을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조심스럽지만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과의사로서 환자들에게 계속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이고 싶고, 그러려면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잘 유지해야 하니까요.”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이 울산을 넘어 우리나라의 모든 환자가 늘 믿고 찾는 병원이 될 수 있도록 발전하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릴 적 그는 누나에게 “내가 하기 싫은 것은 다른 사람도 하기 싫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종종 이 말을 떠올린다. 평소 하기 어렵고, 이루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이 사실은 내가 하기 싫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그는 그에게 주어진 여러 일과 목표가 어려운 것으로 변하지 않도록 매 순간 노력한다. 이렇듯 내력(耐力)이 탄탄한 그가 울산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이기에 울산대학교병원이 안팎으로 견고하고 튼튼하게 성장할 것은 해가 뜨고 달이 밝는 것처럼 당연한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