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가볍게 죽음을 이야기한다

글 최영미 / 사진 백기광(스튜디오100)

이야기의 시작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님이 몇 년 사이 차례로 크게 아프셔서 병원 신세를 오래 졌다. 그때마다 의사는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눈물바람을 하고 최선을 다해 두 분을 보살폈다. 두 분 모두 70세 신고식을 크게 치르신 이후 신기하게도 그전에는 좀처럼 없던 시간이 절로 생겼다.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더니 결국 몸뚱이나 아프고 억울하다”고 하셨고, 어머니는 “니들한테 이렇게 짐이 되는구나”라고 하셨다. 이 두 번의 병간호로 생긴 변화는 부모님과 ‘죽음’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 없는 삶, 어머니 없는 삶… 생각해본 적 없고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었는데, 이제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 죽으면…”, “엄마 죽으면…”, “아빠 죽기 전에…”, “엄마 죽기 전에…” 하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게다가 자식인 나까지 쓰러져 죽음 문턱에 다녀왔으니 “내가 먼저 죽으면…”까지 대화에 등장했다. 그렇다고 죽음이 마냥 쉬워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많은 경험을 하며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가능하면 후회하지 말자고, 표현하고 살자고, 서로 덜 짐이 되게 하고 가자고 다짐했을 뿐이다. 서로 많이 안아주고, 자주 사랑한다 말하고,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 우리가 아팠던 시간이 오히려 서로에게 시간을 주었음을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이별은 슬플 것이다. 많은 것이 후회로 남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마음껏 슬퍼하고 후회하면 될 일이다. 이별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40대 초반, 가깝게 지내던 동갑내기 동료가 암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 몇 해 전에는 사수였던 선배 역시 암으로 생을 달리하고, 몇 달에 한 번은 보던 홍보담당자는 과로로 쓰러져 회사에서 삶을 마감했다. 막내 삼촌이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쓰러져 돌아가시는 모습을 CCTV에 찍힌 모습으로 마주했고, 가깝게 지내던 이웃이 50대 초반에 급성심근경색으로 의자에 앉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은 P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전해줬다. 나이가 들면서 쌓이는 경험 중 하나는 타인의 죽음이다. 그 속에서 나의 마지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결혼을 하지 않은 1인 가구로서 별의별 상상을 다 하게 된다. 부모와 형제, 지인의 죽음보다 감당하기 힘든 것이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웰다잉(Well-Dying)이니 웰엔딩(Well-Ending)이니 해서 세계적으로 죽음에 대한 긍정적인 받아들임을 이야기하는 추세이지만, 말이 쉽다. 이런 생각 속에서 나는 ‘부질없음’이라는 단어와 만난다. 살림을 줄이고 재산을 없애고 가벼워졌다. 가진 것이 없어지니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게 점점 더 가벼워져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어느 날 곡기를 끊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결말을 꿈꾼다. 그 순간, 삶의 미련과 억울함과 아쉬움 같은 것을 남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의 오랜 고민의 결론은 “지금 행복해야 한다”이다. 죽으면 다 부질없다.

글을 쓴 최영미 편집장은 여러 매체를 거쳐 「헬스조선」 매거진 편집장을 마지막으로 2013년 현업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미니멀·슬로·에코라이프를 실천하며, 몇 년간 파이어족으로 살다 다시 현업으로 돌아와 2019년 독립출판사를 차리고 월간지 「슬로매거진달팽이」를 발행하며 자신의 경험을 녹이고 사회에 질문을 던지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강릉 슬로라이프 매거진 「시나미」 편집장을 겸하며,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삶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