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유서영, 이지혜, 최현지 간호사

울산대학교병원은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맞아 직원들을 대상으로 수기 공모를 진행했다. 그 결과 6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상으로 선정된 81병동 간호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보자.

글 유서영, 이지혜, 최현지(81병동)

익숙한 병동, 낯선 생활의 시작

“코로나 환자 보는 거 힘들지 않아?”, “으, 저리가”, “코로나 환자들은 어때?”

주변 지인들에게 코로나 확진자를 보는 간호사라 이야기하면 여러 가지 반응이 나왔다. 걱정부터 호기심, 그리고 회피까지. 주변인들의 다양한 반응에 웃고, 실망하고, 걱정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코로나 병동 간호사로 일하게 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응급 상황에서도 빠르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간호사의 모습을 보고 꿈을 키운 나는 2019년 울산대학교병원 81병동에 신규 간호사로 입사했다. 선배 간호사들을 보고 ‘나도 저런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과 동시에 열심히 배워 멋진 간호사가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일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었지만 동기들과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함께 잘 버텼다. 그렇게 1년 차라는 힘든 시기가 지날 무렵, 2019년 12월부터 언론에서 중국 우한 바이러스 관련 사건들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우리 병동은 음압병실이 있는 국가 지정 입원치료병상이라 감염병 확산 시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환자들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음압병실에는 결핵 환자들만 입원해 있었고, 메르스 사태처럼 울산 지역에서는 유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2020년 1월 25일부터 코로나 감염 의심환자들이 우리 병동으로 입원하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감염관리 교육, 방호복 착탈의 교육을 받아 왔지만 막상 실전으로 다가오니 제대로 입었는지, 잘 벗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들이 계속 신경 쓰였다. ‘만약 내가 확진이라서 주변인들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등 온갖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다행히 병동 내 입원한 의심 환자들은 모두 음성이 나왔다.

그러나 국내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울산에도 2020년 2월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보가 많이 부족한 신종 감염병이라 무섭고 불안했지만, 무엇보다도 질병에 걸린 환자가 가장 힘들어했다. 환자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정서적, 신체적으로 의료진에게 많이 의지했고, 우리는 환자의 안위를 위해 공부를 많이 했다. 2020년 2월 22일, 첫 확진자를 시작으로 우리의 코로나 병동 생활이 시작됐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업무 환경과 체계, 지침 등 출근하면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바뀌고 있었다. 감염 예방을 위해 별도의 격리구역이 필요해 평소 일반 환자가 사용하던 병실에는 큰 음압기계를 설치했고, 간호사실과 병실 사이에 가벽을 세워 코로나 확진자들의 공간을 더 늘렸다. 타 병동과 완전히 차단됐고 출근하면 병동 전체 청소로 업무를 시작했다. 식사도 원내 식당이 아닌 병동 내에서만 할 수 있도록 조정됐다.

물론 처음부터 체계가 잡힌 것은 아니었다. 방호복을 입고 격리구역과 간호사실 영역을 구분해서 업무를 하다 보니 일의 연속성이 떨어졌고, 격리구역 간호사와 간호사실 간호사 간의 의사소통이 어려워 업무가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 부족한 부분을 점차 개선해 나갔고 현재 울산의 유일한 코로나 병동이 됐다.

감염병이 아로새긴 사람들

코로나 병동에서 업무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몇 명의 환자가 있다. 처음에는 경증환자들이 많이 입원해서 ‘코로나가 소문만큼 무섭진 않구나’라고 생각이 들 때 즈음이었다. 어느 날 60대 환자가 입원했다. 입원하자마자 호흡곤란이 심해 고농도 산소치료를 받았고, 다음 날 기관 내 삽관을 통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했다. 환자는 날이 갈수록 상태가 급격히 악화해 입원한 지 한 달 만인 2020년 3월 31일 사망했다. 울산 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첫 사망자였다. 환자의 가족들이 통곡하는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의료진들의 안타까운 정적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슬픔과 동시에 코로나의 무서움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 된 순간이었다. 한 번은 임산부 확진자가 입원한 적도 있었다. 배 속에 있는 아기가 걱정되어 임산부 환자는 정서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 그런 환자를 위해 담당 간호사였던 나와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은 손편지를 써서 환자를 응원했고, 매일 태아심음검사를 하며 아기와 임산부의 건강에 힘썼다. 환자는 무사히 퇴원했고,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기쁘고 보람찼다.

이외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입원했다. 92세 할머니 환자는 식사 보조가 1시간 정도 걸렸지만 모든 간호사가 싫은 내색 없이 식사를 챙겨드렸다. 14개월 아기 환자는 엄마, 외조부모 모두 코로나에 감염되어 입원했다. 다들 답답한 병실 생활로 힘들었을 텐데, 건강하게 지내다가 안전하게 퇴원해서 기뻤다. 그렇게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게 익숙해질 즈음 울산 내 요양병원에서 확진자가 대거 발생했다. 우리 병동만으로 환자들을 수용하기 어려워진 상태라 2개의 병동을 추가로 오픈했다. 예전에는 자가간호와 거동이 가능한 환자들이었다면 요양병원에서 전동 온 환자는 대부분 고령의 기저질환이 있는 허약한 환자들이었다. 모든 부분을 간호사 혼자서 돌봐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장시간 방호복을 입고 일했고, 그로 인해 우리 간호사들은 이전보다 지쳐갔다. 또한 감염 위험성으로 보호자들의 면회가 제한되어 매일 환자들의 상태를 물어보는 전화가 왔다. 환자 상태와 전반적인 치료에 대해 알려줬고, 환자 상태를 걱정하는 보호자를 다독였다. 환자들이 많아지고 업무강도가 세지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고, 퇴근하면 항상 기절하듯 잠을 잤다.

우리를 버티게 한 응원의 힘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환자도 많았다. 병실에 들어갈 때마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습니다”, “수고하십니다” 등 따뜻한 말 한마디로 인사를 건네는 환자들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작은 한마디를 들은 날은 항상 기분 좋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퇴원한 뒤 간호사들 덕분에 무사히 퇴원하게 되어 기쁘다는 손편지를 써준 환자들도 있었다. 그 손편지는 병동 내 게시판에 붙여져 있는데 힘들 때면 읽어보고 다시 힘내서 일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어린이집, 유치원, 기업체, 개인사업자, 종교단체, 지인 등 여러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응원 메시지와 격려의 말들과 함께 후원물품 등을 보내주기도 했다. 환자들이 코로나를 이겨내고 건강하게 퇴원하는 모습과 많은 시민들의 응원은 우리가 힘든 시기에도 잘 이겨가며 일할 수 있던 원동력이었다.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국내에 유행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코로나 병동 간호사’라는 이유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동네 병원에서 진료 거부를 겪고, 간호사실에서 식은 밥을 먹으며 일했다. 특히 타지에 사는 동기는 몇 달 동안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기숙사에 계속 남아있었다. 코로나 병동으로 바뀐 그해 첫 여름, 코로나 환자들을 마주하기 위해 착용한 방호복은 몹시 덥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눈앞이 핑 돌았다. 열을 식히기 위해 아이스 조끼를 방호복 속에 착용했지만 얼음이 녹아내리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고글 사이를 흘러나와 마스크까지 적셨다. 흐르는 땀 때문에 ‘감염되겠다’ 싶어 더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서둘러 격리구역에서 나온 일도 있었다. 감염으로 인한 불안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으로 상처받은 우리 간호사들의 ‘마음’은 누가 치료해줄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본다. 환자들을 돌보는 데 정신없어 신경 쓰지 못했던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우리 병동 간호사들은 수간호사 선생님부터 신규간호사까지 손에 껍질이 잔뜩 일어나 있다. 업무가 끝나고 여러 개의 장갑 속에서 퉁퉁 불어있는 우리의 손은 하얗게 껍질이 일어나 핸드크림을 발라도 어디 내놓기 창피한 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손이 부끄럽기보다 자랑스럽다. 주기적으로 코로나 검사를 시행하며 불안 속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병동 간호사로 남아있다. 일은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조금의 불안감은 모두의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 긴장감으로 우리는 감염에 더욱 조심하며 병동 내 감염자 없이 업무를 해나가고 있다.

다음 주부터 백신 접종이 시작된다. 이전부터 백신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지만 승인을 받고 접종이 본격화되면서 희망을 갖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면서 기약 없는 약속과 경제적인 어려움에 많은 이들이 지쳐가고 있다. 답답했던 마스크가 어느새 익숙해졌고, 자유롭던 일상은 어느 틈에 먼 이야기가 되었다. 모든 이들이 백신을 맞고 정부의 지침을 잘 지켜서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들은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뛰어 놀고, 마음 놓고 서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일상으로. 그전까지 우리 코로나 병동 간호사들은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매일 방호복을 입고 정성으로 환자를 간호할 것이다. 앞으로도 지금까지 잘해왔던 것처럼. 81병동 파이팅! 모든 의료진분들 항상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