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는 "여행자의 마음으로 '지금'을 바라보는 것이 떠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자연과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도심 속 녹지는 정체된 몸과 마음의 장면을 바꾸는 데 더없이 좋은 장소. 겨우내 긴 침묵을 깨고 봄단장이 한창인 울산대공원에서 일상이 여행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자.

글 류진(여행작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봄과 숲의 향긋한 위로

영국의 박물학자 에바 미첼은 저서 『야생의 위로』에서 녹지를 산책하는 일의 유익함을 책 한 권에 걸쳐 칭송한다.

“나는 최근 들어서 단 5분이나 10분이라도 녹지에 있는 것이 얼마나 유익한 일인지 깨달았다. 그저 집 밖으로 나가 오두막 맞은편의 가시자두나무와 보리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면에서 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반응이 일어난다. 보이지 않고 소리도 없는 뇌 내의 화학작용이 나에게 위안과 동시에 치유를 가져다준다. (중략) 잘 다듬어진 잔디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서려는데 막 씨앗을 맺거나 꽃을 피우려 하는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백악질 토양에 반쯤 묻혀 있는 숲달팽이의 노란 줄무늬 껍데기를 발견하거나 짖는 사슴이 허둥지둥 달아나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우리 집 맞은편의 보리수를 보면서 느꼈던 정신적 안도감이 몇 배로 증폭된다.”

꽃과 풀, 나무와 그 틈새에서 서식하는 동물이 만들어내는 장면은 마음의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 액서터대학교 연구팀은 도시 환경 속 식물의 존재가 실제로 거주자의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 인지도를 감소시킨다고 말한다. 자연이, 호르몬과 교감 신경계의 작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다.

야생의 자연을 지척에 둘 수 없는 도시인들에겐 공원이 숲이다. 일상의 근심이, 코로나블루의 기세가 부드럽게 누그러지는 곳. 뉴욕에 센트럴 파크, 런던에 하이드 파크가 있다면 울산엔 369만 평 부지 위에 들어선 잘 다듬어진 자연, 울산대공원이 있다. 메타세쿼이아길, 느티나무 산책로와 꽃밭, 장미원, 식물원과 동물의 보금자리를 품은 울산대공원은 긴 겨울의 침묵을 깨고 봄 채비에 한창이다. 이제 막 봉오리 맺은 초화, 슬그머니 어린잎을 틔운 나무들의 싱그러운 기운이 공원 구석구석을 채운다.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공원

피톤치드는 식물을 의미하는 파이톤phyton에 ‘죽이다’라는 뜻의 접미어 –cide를 붙인 조어다. 식물이 뿜어내는 이 물질은 실제로 무언가를 죽이는 역할을 한다. 식물이 생장하는 데 방해되는 박테리아, 곰팡이, 해충이 희생의 제물이다. 고맙게도 이 물질은 사람의 몸에 있는 병원균까지 씻어준다. 숲이 우리 몸의 자율신경을 안정시키고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이유다. 최근 울산시보건환경연구원은 울산대공원의 피톤치드 농도가 도심 한복판보다 약 30% 이상 더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치유의 ‘기운’이 가장 짙은 곳은 동문과 정문의 중간에 자리한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울울창창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 사이엔 천천히 걷기 좋은 산책로와 맨발로 고운 황토를 밟으며 땅의 감촉을 느낄 수 있는 세족장도 있다.

산책을 이어나가고 싶은 이에겐 몇 개의 선택지가 더 있다. 밑둥 굵은 나무의 기운찬 에너지를 느끼고 싶다면 동쪽의 느티나무 산책로로 향하자. 꽃이 각자의 계절을 따라 만개하는 풍경은 공원의 남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다. 가자니아, 튤립이 드넓게 물결을 이루는 사계절 꽃밭과 섬백리향, 감국, 붓꽃, 당종려, 코코스야자 등 32종의 초화류와 아열대 식물이 자라는 자연 학습원, 큐피드, 비너스, 미네르바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정원으로 꾸며진 장미원은 자연의 수려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다. 코로나로 인한 휴장 시기 동안 열대과일나무와 식충식물 군락지를 새롭게 더한 생태 식물관과 새로 태어난 아기 나귀와 면양으로 더 북적해진 동물원, 꽃과 나비의 다정한 시간을 관찰할 수 있는 나비 정원의 이국적인 풍경은 떠나기 어려운 시절의 아쉬움을 달랜다.

울산대공원 여행 정보

울산 남구 대공원로 94 | 052-271-8818

여행작가 류진은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트래블러」, 패션 매거진 「코스모폴리탄」 등에서 일하며 42개국 200여 개 도시를 여행했다. 유행의 흐름을 붙잡아 소개하는 일을 하다가 지치면 야생의 대자연으로 도망친다. 자연과 도시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사는 삶을 글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