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병원은 코로나19 팬데믹 1년을 맞아 직원을 대상으로 수기 공모를 진행했다. 그 결과 6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최우수상으로 선정된 울산대학교병원 수술실 김윤희 간호사가 올봄 코로나19 환자의 첫 수술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글 김윤희(수술실 간호사)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수술실 문이 열리고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음압텐트 안에 갇힌 채 입실을 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마스크를 쓴 채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며, 밤새 엄마에게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보챘을 것 같은 어린아이입니다. 자그마한 두 손의 손톱은 깨끗하게 다듬어져 있고, 양쪽 두 볼과 입술은 열이 나는지 발그레 빛이 납니다. 우리는 모두 레벨D 방호복을 입고 보호구를 착용한 채 음압텐트에 몰려듭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첫걸음의 감동

나를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주겠다고 다짐하며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은 지 어느새 2년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간호사’ 그리고 ‘20대 평범한 여성’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입니다.

처음, 울산대학교병원에 면접을 보던 날과 합격 소식을 들은 날, 그리고 수술실 문을 열고 들어왔던 첫걸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토록 소망하던 곳에서 일하며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설렘과 벅찬 감정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내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술실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수술 중’이라는 팻말에 불이 켜지고 우리는 수술에 임합니다. 수술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구와 다양한 장비, 수많은 진료 재료! 수술 전 이 모든 것의 준비와 수술 상 준비, 마취 후 진행되는 모든 수술상황. 10개 과의 모든 과정을 직접 참여해 배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명의 간호사가 수술실 인력으로서 온전히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그만큼 수술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책임감 있게 역할을 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눈물 없이는 어른이 안 된다던 부모님의 말씀처럼 저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19 환자의 첫 수술

어느새 수술실 교육이 끝나고 독립을 시작했을 즈음,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가 급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너무나 강한 전염력에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방역에 들어가야만 했던 우리나라는 ‘감염병 재난 위기경보’에 돌입했습니다. 전국 모든 의료진은 비상에 걸렸고 울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은 지역에서 유일한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최일선에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켰으며 코로나19 환자 대부분을 치료했지만,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를 수술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12월의 어느 날, 나이트근무를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겨울의 싸늘한 냉기 속에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밤이었습니다. 차창에 하얗게 내린 성에는 기온이 내려갈수록 빛을 내어 ‘코로나19’처럼 더욱 서슬이 서는 듯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여 수술실 라운딩(Rounding)을 하고 있는데, 당직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초등학생의 ‘급성맹장염’ 수술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1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이 변했고, 어느 정도 상황에 적응했지만 코로나19 환자 수술은 처음 겪는 일이었습니다.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결국 맹장이 터져 ‘패혈증’까지 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이고, 다른 응급수술도 있었기에 몸과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코로나19 감염환자의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수술실 의료진 인원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환자 이동 동선을 줄여 노출을 최소화하여 안전한 수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줄 수 있는 건 따스한 눈길이 전부

수술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감염 노출 위험 최소화를 위해 통제구역이 설정되었으며, 승강기를 단독으로 운행, 전실이 있는 음압수술실이 결정되어 노출 최소화 작업을 했습니다. 수술 전 모든 마취와 수술 준비, 각종 적출물 처리와 방역 준비, 음압 환경 점검을 모두 마친 후, 레벨D와 보호구를 착의했습니다. 환자 이송이 시작되고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습니다.

음압텐트 속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아주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위해 줄 수 있는 건 눈길이 전부였습니다. 그 또한 보호구 안의 ‘눈길’인지라 두려움에 흐느끼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신규 간호사 교육 때 흘렸던 눈물과는 달랐습니다.

무영등이 밝혀지고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레벨D 보호구 위에 멸균 수술복, 그리고 멸균 장갑을 착용했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어진 ‘전신 보호복’과 ‘N95 마스크’ 그리고 ‘고글’과 2KG 가량의 ‘전동식 호흡 장치’까지 착용하니 숨이 가슴까지 차올랐습니다. 수술과정에서 의료진들은 의사소통을 하며 필요한 기구나 진료재료들을 주고받지만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소통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3mm 정도의 봉합사를 다루는 일이며, 미세한 복강경 그리고 작은 기구들의 작동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침착하게 수술은 진행되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수술 후 탈의를 마치고 서로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온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방호복 안에서 계속 내쉰 숨결이 완전히 나를 데워서 얼굴은 온통 상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긴 터널 지나 밝은 빛이 일상을 비추기를

평소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수술이지만 모든 준비과정부터 방역까지 대략 4~5시간이 걸렸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정확한 지침과 대책 방안이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의료진과 환자 간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환자의 첫 수술을 경험하며 ‘코로나 전담병동’ 의료진들이 생각났습니다. 그 힘들고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환자를 지켜온 코로나 전담병동 의료진들. 의료인으로서 진심을 다해 존경한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확진 환자 수술이 결정되고부터 환자의 이동 동선과 레벨D와 보호구의 착의와 탈의 방법, 기구소독과 멸균, 방역까지 모두 진행해주신 감염관리실 선생님들과 수선생님들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함께 수술에 참여한 의료진과 가장 곁에서 저를 지원해주신 김지원 선생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최전선에서 일해야 하는 모든 의료진들! 서로 돕고 응원해가며 긴 터널이 빨리 끝나 밝은 빛이 우리 일상을 비추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수술실 발령에서부터 새로운 재난 상황까지 모든 것이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지만 그 여운은 마음 깊이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입니다.

“두려움에 눈시울을 적셨던 작은 아이야!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지 못했지만 너의 가장 가까이에서 너에게 최선을 다했단다. 언제나 힘찬 나날들이길 우리 모두가 기도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