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유통기한이 있듯 약에도 사용기한이 있다. 식재료 가운데 냉장실에 넣어야 하는 것과 넣으면 안 되는 것이 있듯 약도 마찬가지다.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 정희진 약사가 올바른 약 보관법과 관리법을 알려준다.

글 정희진(약제팀 약사)

대부분의 가정에는 다양한 약을 구비하고 있습니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둔 상비약, 병원에서 처방 받아 먹거나 바르다가 남은 약 등 다양합니다. 약은 알맞게 관리해야 제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 보관했는지 모르는 약을 ‘약이니까 괜찮겠지’ 생각해 그냥 사용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음식처럼 약에도 사용기한이 있습니다. 냉장실에 넣어야 하는 식재료와 넣으면 안 되는 것을 구분하는 것처럼 약도 종류에 따라 보관법이 다릅니다. 이번 호에서는 올바른 약 보관법을 소개합니다.

글을 쓴 정희진 약사는 울산대학교병원 약제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관하는 장소부터 사용기한까지

대부분 약은 서늘하고 건조하며 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합니다. 숫자로 나타내면 섭씨 25도 이하와 습도 60퍼센트 미만입니다. 간혹 약도 음식처럼 생각해 냉장고에 보관하면 오랫동안 신선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냉장고는 습기가 많아 약을 보관하기에 그다지 좋은 환경이 아닙니다. 하지만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하는 약도 있습니다. 몇몇 안약, 인슐린 주사, 항생제 시럽 등이죠. 이런 약제는 제약회사에서 만들어 약국으로 운반되고 조제되는 내내 냉장 상태로 보관됩니다. 조제할 때도 냉장 보관 표시를 해둡니다. 이런 약은 반드시 냉장고에 두고 처방 받은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실온에 보관해야 하는 약을 냉장 보관하거나, 냉장 보관해야 하는 약을 실온에 두면 약 성분이 변하거나, 침전물이 생기거나, 맛이 지나치게 써져 먹기 힘들어지거나, 약효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약마다 권장되는 곳에 보관해야 사용기한 끝까지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약의 사용기한은 어떻게 확인할까요? 약마다 사용기한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때 ‘사용기한’은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에서’ 그 날짜까지 약의 효과가 보장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뚜껑을 따거나 은박지 포장을 벗기거나, 다른 병에 덜어 공기에 노출되면 표기 날짜보다 사용기한이 줄어듭니다. 약봉지에 포장된 약은 포장된 날로부터 1년, 연고는 개봉 후 6개월, 가글과 시럽, 안약은 1개월 정도입니다. 가루를 물에 녹여 만드는 시럽, 냉장 보관해야 하는 약 등은 개봉 뒤 기한이 더 짧아지므로 반드시 개봉한 날짜를 적어두고 기한 내에 사용해야 합니다.

먹는 약은 대부분 1회 복용량씩 포장하거나 컵에 덜어 복용하기 때문에 나머지 약이 오염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하지만 파스, 밴드, 연고, 안약 등은 자르거나 덜어 써야 하므로 나머지 약이 변질될 수 있습니다. 1회용으로 나온 약은 보존제가 없기 때문에 쓰고 남은 것은 바로 버려야 합니다. 아깝다고 생각해 보관해두었다가 다시 쓰면 안 됩니다. 여러 번 쓸 수 있는 약은 일부를 쓴 후 나머지를 잘 밀봉해서 보관해야 공기에 노출되지 않습니다. 안약이나 연고 등은 몸에 직접 대고 쓰면 약통 안이 오염될 수 있습니다. 습기 있는 손으로 만지지 말고, 땀이나 진물에 직접 닿지 않도록 공중에서 떨어뜨리거나 면봉 등을 이용해 덜어내는 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병원이나 약국처럼 보관 조건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곳에서도 간혹 약이 변질되는 일이 생깁니다. 그래서 약제팀은 모든 약 하나하나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조제합니다.

가정에서 주의사항을 지켜 약을 잘 보관했다 하더라도, 사용 전에는 꼭 상태를 확인해주세요.

버릴 약은
병원이나 약국에 가져다주세요

주의사항이 많죠? 그렇지 않아도 복용하는 시간이나 부작용 등 신경 쓸 것이 많은데 말입니다. 이 모든 걸 외워서 지키려면 쉽지 않으니 각 약의 특징을 포장 겉면에 적어두면 좋습니다. 어느 곳에 보관해야 하는지, 언제 개봉해서 언제까지 쓸 수 있는지 알기 쉽게 적어두고, 설명서나 복약지도문도 함께 보관해주세요. 어떤 증상에 먹는 약인지, 한 번에 몇 알씩 얼마나 자주 복용해야 하는지 확인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

이번 기회에 집에 있는 약을 정리하고, 그중 버릴 약은 근처 약국이나 병원에 가져다주세요.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 버리면 환경이 오염됩니다. 외국의 어떤 해안에 원래 잘 나타나지 않던 게들이 올라와서 새들에게 떼죽음을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원인을 파악해보니 그곳 바닷물에서 게들을 흥분시키는 성분이 많이 검출되었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이 다른 쓰레기와 함께 버려서 바다로 흘러간 약이 원인이었습니다. 한편 포장이나 복약지도서가 없어서 복용법을 모를 때는 약국에 가지고 가서 물어보면 됩니다.

일을 하다 보면 ‘병원에서 주는 대로 먹으면 되죠’ 하는 말을 굉장히 많이 듣습니다. 다양한 내용을 설명하려고 해도, 이렇게 말씀하시며 약을 가져가기에 급급한 분들을 만나면 힘이 쭉 빠집니다. 의외로 가정에서 약물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무좀약을 비슷하게 생긴 안약으로 착각해 눈에 넣어 안구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고, 질에 넣어야 하는 알약을 먹는 일도 있습니다. 무좀약에 크게 ‘무좀약’이라고 적어 놨다면, 무좀약을 다 쓰고 나서 버렸다면, 질에 넣어야 하는 알약에 ‘먹지 말고 질에 넣기’ 등 주의사항을 적어 놨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진료와 처방, 약을 조제하고 교육하는 것은 병원 직원들의 업무지만, 그 약을 잘 관리하고 사용해서 제 효과를 누리는 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