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여행자가 도착했습니다

글 오정림 / 사진 백기광(스튜디오100)

부모가 아기를 갖는 게 아니라
아기가 부모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엄마 배 속에 내려앉기 전부터 아기는
이렇게 자기만의 긴 여행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는 찾아냅니다.
더없이 소중하게,
언제까지나 사랑해줄
나의 엄마 나의 아빠를

태교 동화 『하루 5분 아기 목소리』 에필로그 일부분이다. ‘태교 그림 동화, 아기 여행자’라는 부제처럼 생명의 씨앗을 품은 아기 여행자가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아이가 돌쯤 되었을 때 만난 이 책을 하루에 몇 번씩 찾아 읽었다. 아이가 힘차게 젖을 빨고, 트림하고, 잘 자는 사소한 순간들이 고마우면서도, 서툰 엄마라 아이를 힘들게 하는 건 아닐까 자책하는 날들을 보낼 때였다. 그런 필자에게 아기 여행자의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큰 위로가 되었다. 아이가 “괜찮아. 엄마와 함께 기꺼이 이 시간을 보내려고 왔지.”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엄마인 내가 아이의 신중한 고민 끝에 간택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고마웠다. 해답을 찾은 기분도 들었다. 아이가 어제는 못 하던 말을 하고, 기고 일어서고 걸으며 하루, 한 시간, 일 분… 과학적 근거로도 온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생명의 에너지를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애초 탄생의 주도권은 아이에게 있었고, 삶의 주인공은 아이 자신이라 여기면 간단히 이해되었다.

‘아, 生이란 이토록 생생한 것이구나!’

우렁찬 울음소리로 탄생을 알리며 태어난 날부터 아이가 자라는 모습은 방금 돋아난 새잎처럼 반짝거린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 삶이 이렇게 생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 생생함은 아이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아이와 보는 첫눈, 첫 여행, 첫 바다 등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처음인 부모의 삶에도 윤기가 생긴다. 아이로 인해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니, 아이가 없었다면 잊었을 생의 생생함을 선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탄생으로 인해 부모가 받는 것이 어디 이뿐일까. 육아의 고비마다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내 안의 나를 다독이는 일, 세상 모든 아이의 기쁨과 슬픔에 곤두선 감정의 촉각, 오로지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마음, 진정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살아보는 경험, 아이로 인해 겸손해지는 이 모든 날을 어찌 생명이 준 선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거저 주어지는 생명은 없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도 없다. 그러므로 생명이 탄생하는 곳, 생명으로부터 선택받은 자 모두 좋은 어른으로 살게 하는 기회를 마땅히, 최선을 다해 치러내야 한다. 영화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에서 주인공 로저스 아저씨(톰 행크스)는 부모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부모가 된다는 건 인생을 다시 사는 기회를 얻은 거죠”라고 말한다. 새 생명이 찾아와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탄생이 축복받아야 하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글을 쓴 오정림 편집장은 15년간 육아 전문 기자로 지냈다. 현재는 육아 미디어 <맘앤앙팡>에서 아이와의 행복한 삶을 위한 책, 전시, 캠페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잘’ 사는 기준이 달라졌다.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선택하고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