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은 자체로 축복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생명의 잉태와 탄생이 드물고 힘겨운 요즘이다. ‘生’의 순간을 자주, 그리고 직접 조우하는 산부인과 김정숙 교수에게 출산을 둘러싼 그의 철학과 난임 치료에 대해 물었다.

탄생의 순간 함께하는 의사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사람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큰 고통을 의미한다. 생로병사의 모든 과정에 긴밀하게 개입하는 건 의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과정에서 기쁨의 환희를 전하는 건 ‘생(生)’의 순간뿐. 새 생명의 탄생은 경이롭고 찬란하며 아름다운 축복이다. 이를 가까이서 고민하고 함께하는 산부인과 의사. 그뿐 아니다. 산부인과 의사는 한 생명이 잉태된 임신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출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한다. 울산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김정숙 교수에게 이 모든 과정은 그저 감사한 일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난자와 정자라는 생식세포부터 관찰할 수 있음에 축복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정된 난자에서부터 자라는 존엄한 생명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이 산부인과 의사로서 제 철학입니다.”

산부인과 특성상 김정숙 교수의 마음 한 자리에 남는 사연도 많다. 그 사연들은 매순간 한 편의 드라마 이상의 가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과 산모의 수고를 가장 가까이서 보기 때문이다.

“자궁과 난소의 여러 가지 문제로 임신이 되지 않아 오신 분들, 암 치료 후 혹은 치료 중에 엄마가 되기 위해 찾아오시는 분들은 더욱 마음이 쓰입니다. 이런 어려움 가운데 임신하고 출산해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들을 때 큰 감동을 느낍니다.”

기쁨의 전율을 느낄 때와 반대로 마음 아픈 순간도 많다. 어렵게 임신했지만 조산하거나 유산해서 아이를 보내야 할 때다. 그밖에 모든 순간이 김정숙 교수의 마음에 그대로 박힌다.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원해서 완치되고 자연분만한 산모, 임신 중 혈액암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아기를 유산시켰지만 항암치료 뒤 완치해 다시 임신한 산모, 반복유산으로 힘든 가운데 면역조절로 건강하게 임신과 출산을 한 산모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자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자궁보존술을 시행한 뒤 무사히 임신과 출산을 한 산모가 진료실을 찾아와 아기 백일 사진을 주었던 때는 잊을 수가 없다.

저출산 시대, 다시 가정으로

부모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부모 되기를 거부하는 이도 상당수다. “결혼은 좋지만 아이는 싫다”고 말하는 이른바 ‘딩크족’(맞벌이로 많은 돈을 벌면서도 의도적으로 자식을 낳지 않고 결혼 생활을 하는 이들)이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손꼽히는 저출산에 대해 김정숙 교수는 늘 고민한다.

“출산과 양육은 부모가 되는 사람 혹은 양육자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과정입니다. 사회가 고도화된 기술과 문명을 영위하기 위해 가정과 가족이라는 사회 구성의 가장 기본 단위를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출산의 원인 아닐까요?”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고, ‘인구절벽’이라는 큰 위기가 현실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김정숙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가정(Family)’에서 찾는다. 아기를 낳고 키우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회가 되려면 가정의 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이제 다르게 발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가정‘이라는 사회의 기본 단위를 회복하고 강조해야 ‘인구절벽’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교육이나 사회활동도 가정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정의 행복을 우선으로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서 재택근무를 활성화하고, 사회가 출산을 더욱 장려하고 양육 부담을 함께 나누는 모습이 보편화될 때 비로소 이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늦은 결혼과 출산이 낳은 문제, 난임

김정숙 교수의 전문 진료 분야는 월경이상, 습관성 유산, 난임 치료, 암환자를 위한 가임력 보존, 임신과 출산, 그리고 폐경 관리다. 복강경 또는 로봇 자궁보존술, 자궁경 내시경술 같은 수술로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자궁선근증, 자궁내 이상 출혈 등을 치료하며 호르몬 치료를 시행한다.

김정숙 교수의 진료과목 중 하나인 ‘난임’도 사회문제로 손꼽힌다. 난임이란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적정 연령의 건강한 남녀가 결혼하여 피임을 하지 않고 정상 부부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정상적인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 부부생활을 한다면 생리 주기당 임신 확률은 20% 정도로, 보통 1년 이내에 90% 정도가 임신을 한다. 하지만 특이한 소견이 없는데도 결혼 1년에서 2년 뒤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난임을 의심하고, 가까운 산부인과를 방문하여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부부 10쌍 중 2~3쌍이 난임을 호소하며, 매년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난임이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난임의 원인은 보고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40~55%의 여성 요인과 20~30%의 남성 요인, 그리고 약 30%의 원인불명으로 나뉩니다. 여성에게서는 난소 기능의 저하, 배란, 난관, 자궁, 골반 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고, 남성은 발기 장애, 정자 수 감소(희소정자), 정액에 정자가 없는 무정자증, 역행성 사정 등을 원인으로 꼽습니다. 여성과 남성 요인 모두 늦어지는 결혼과 출산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난임의 원인을 진단하고 치료하려면 부부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아 상담과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임신 시도 후 12개월이 지나도록 임신이 되지 않으면 난임 평가와 검사를 시행하지만 부부의 나이와 이전 임신 및 출산력, 기타 동반질환 유무 등을 고려하여 난임 전문의가 판단해 바로 검사를 시행할 수도 있다. 검사 뒤 ‘난임’으로 진단되면 치료를 시작한다.

“난임 치료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합니다. 첫 번째는 가능한 한 정상 몸 상태로 돌려 자연 임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적극적으로 임신유도를 하는 방법입니다. 대개 첫 번째 방법으로 최선을 다한 뒤 두 번째 방법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임신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거쳐 임신을 한 후 안전한 출산까지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환자는 주치의의 처방을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명의 탄생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새 생명을 낳는 일에 많은 부담과 책임이 따르는 시대, 아이 대신 여유 있는 삶을 선택하는 부부가 늘고, '비혼주의'를 택하는 이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토록 새 생명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많은 이유가 있을 테지만 무엇보다 작디작은 존재가 주는 커다란 영향력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한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성장까지 지켜보는 일이 인생 최고의 가치이자 가장 아름다운 의미임을 진즉에 눈치 챘기 때문일 것이다. 2021년, 가장 최선의 진료로 다가가고 싶다는 김정숙 교수는 “진료와 연구를 병행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난임 문제를 풀어가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여 먼 미래에 닿았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물기 머금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곳저곳에 가득 퍼지는 훗날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울산대학교병원 산부인과

1975년 해성병원으로 개원 당시 분만과 부인과 수술 위주로 시작한 울산대학교병원 산부인과는 대학병원으로 전환되고 상급종합병원으로 선정되면서 울산 지역에서 중요한 의료 인프라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성장했다. 산부인과는 크게 산과, 부인암 파트, 난임, 일반 부인과로 구성된다. 매년 2만5000명 정도의 외래 환자가 방문하고, 연간 2500명 정도의 입퇴원 환자를 담당한다. 연간 1500건 이상의 수술을 시행하며 이 중 부인암 수술도 상당수다. 울산대학교병원 산부인과는 울산 지역 유일한 상급종합병원으로 울산을 포함하여 경주, 포항, 밀양, 거제 지역의 의료문제를 해결하는 지역거점 병원 특색과 맞물려 포괄적인 산부인과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