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2021년 첫 해가 떠올랐다. 코로나19로 혼란스러웠던 2020년이 어서 빨리 묵은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바이러스로 잃어버린 우리의 지난 일상은 다시 찾을 수 없지만, 다시 떠오른 첫 태양을 바라보며 새로이 채워질 것들에 기대가 솟아났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간절곶에서, 해님께 소원을 빌었다.

글 추효정(여행작가)
사진 이덕환, 편수한(스튜디오100)

우리는 모두 길을 잃은 걸까. 일출이 가진 생명력과는 무관하게 ‘잃은 것’에 생각이 닿은 건 지난 일 년간 숱하게 내뱉고 듣고 생각했던 단어, 코로나19가 새해 첫날의 해돋이까지 빼앗아간 안타까운 현실에 항변하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신년 해돋이를 집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보게 될 줄이야… 그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노트북 화면을 불태울 듯 붉게 솟아오르는 2021년 첫 태양의 기운을 느끼며 일순간 책상 맞은편 책꽂이에 꽂힌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다시 떠오른다』가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 마음을 들킨 것처럼 괜스레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노트북 화면에서 빠져나온 일출의 여파가 두 뺨을 빨갛게 물들이는 것 같았다. 마음의 동요는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헤밍웨이의 생각을 훔친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다. 그럴싸한 말로 바꾼다면 그와 마음이 통했다고 할 수 있다.

『해는 다시 떠오른다』에서 ‘잃어버린 세대’에 관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헤밍웨이에게 해는 다시 떠오르고 다시 돌아오는 연속성을 품고 있다. 길을 잃은 우리가 그 길을 찾기 위해서는, 다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태양의 연속성에 희망을 품어야 한다. 태양 입장에서 매일 뜨고 지는 것이 뭐 대수로운 일일까만 길을 잃은 인간으로서는 만물이 생동하고 성숙하게 하는 일출, 즉 태양의 기운을 통해 하루 중 아침을, 계절로는 봄을, 일생에서는 성장기를 매일같이 선물 받는다.

‘잃은 것’에 관한 단상이 태양의 생명력과 완전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또 한 번 무언가에 마음이 통한 기분이다. 2021년 1월 1일, 오전 7시 31분 대한민국 내륙에서 맨 먼저 해가 떠오르는 곳, 울산 간절곶에서 모습을 드러낸 첫 해의 붉은 기운이 비로소 마음 깊숙이 들어와 제자리를 찾는다. 비록 유튜브 생중계라는 낯선 형태로 맞이한 해돋이였지만 태양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밝고 따뜻한 메시지는 과거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게 해는 늘 그래왔듯 우리 곁에서 다시 떠오르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간절곶에 해가 떠야 한반도에 아침이 온다’는 간절곶 바위에 새겨진 이 문구만으로도 당장 울산으로 달려가고픈 충동이 인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간절곶은 이 표현이 딱 들어맞는 곳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동진, 포항 호미곶과 함께 동해안 최고의 일출 명소로 꼽히는데다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호미곶보다 1분 먼저, 정동진보다 5분 먼저 해가 떠오르는데, 저 문구 그대로 한반도의 새날은 간절곶에서 시작된다.

간절곶은 일출 여행이 아니더라도 유려한 해안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공원으로 조성한 간절곶 일대는 탁 트인 시원한 바다와 해안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가 장관을 이룬다. 상점이 빼곡히 들어찬 여느 관광명소와 달리 간절곶 일대에선 바다를 친근하게 감싸고 자연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1920년 3월 26일 처음으로 불을 밝힌 간절곶등대는 대한제국 때 만들어진 것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상징물이다. 오랜 세월 먼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어부들을 밝혀준 등대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품은 채 이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여행자를 반긴다. 간절곶의 명칭에서 유래된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에 따라 여행자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자리한 소망우체통에 자신의 바람을 담아 전하기도 한다. 간절곶에서 간절히 바라면 모든 꿈이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아서, 그래서 사람들은 수시로 간절곶을 찾는다.

글을 쓴 추효정 여행작가는 월간 「바앤다이닝」에서 여행과 음식, 문화를 아우르는 피처에디터로 일했으며, 오랜 시간 세계를 떠돌며 삶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고 글을 썼다. 현재 잡지와 신문, 사보 등 여러 매체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며, 은퇴 이후의 삶을 다룬 인터뷰 책 『비로소, 나는 행복합니다』를 펴냈다.

간절곶 여행 정보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대송리
· 052-204-1000
· ganjeolgot.ulju.uls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