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 앞둔 원무팀 이철형 부장

끝과 시작의 기쁨

주어진 임무를 책임감 있게 완수한 이에게서는 여유가 묻어난다. 울산대학교병원 원무팀 이철형 부장이 그렇다. 이철형 부장이 1984년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사한 뒤 39년의 세월이 흘렀다. 곧 정년퇴임을 앞둔 그에게 오랜 세월을 보낸 비결과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는 저절로 온다

1984년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사한 이철형 부장은 어느덧 정년퇴임을 앞두었다. 긴 세월 동안 몇 차례 팀 이동이 있었는데, 입사 후 원무팀에서 약 17년, 구매팀에서 약 9년, 총무팀에서 약 6년, 그리고 다시 원무팀에서 약 7년을 근무하며 정년퇴임을 맞는다. 이철형 부장이 입사했을 당시 울산대학교병원은 현대조선 부속 해성병원이었고, 그 후 1987년에 아산재단 해성병원, 1997년 울산공업학원 울산대학교병원으로 전환됐다. 2012년에는 신관 암센터가 준공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울산대학교병원의 성장과 변화를 오롯이 눈에 담아온 그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말한다.

“참 오랜 세월을 울산대학교병원과 함께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는 붉은색 타일로 된 지금의 본관 건물과 병원 맞은편 3층 건물의 기숙사, 지금의 바오로성당은 없었고, 성당 옆에 지금은 주차장과 창고로 사용하는 수녀원이 있었습니다. 병원 주변에는 의사 사택과 현대중공업 기숙사가 있었고요. 전체 직원 수가 많지 않아서 직종과 관계없이 다들 친하게 지냈습니다. 지금은 병원 규모가 커지다 보니 타 직종과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습니다.”

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장기근속했을지 궁금했다.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는 내내 ‘최선을 다하자’라는 다짐을 새기곤 했다.

“‘최선을 다하자’는 제 생활신조이자 우리 집 가훈입니다. 저는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결과도 좋아진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농부가 밭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꾸지 않으면 농작물은 잘 자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이든 대충해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 정년까지 무사히 근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모든 임무를 완수한 뒤엔 여행을

보람 있는 순간도 많았다. 그는 처음 원무팀에서 응급 수납 업무와 자동차보험, 산재보험, 의료보험을 담당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자동차보험이나 산재보험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환자의 처리 방법을 상담하고 처리가 잘되고, 완쾌한 뒤 퇴원하며 “고맙다”는 인사를 해오던 순간, 주로 의료 장비 구매를 담당하던 구매팀 근무 시절, 병원에 필요한 장비를 판매 업체와 협의해 좋은 가격에 구매하여 의료진이 환자 진료 시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던 순간, 총무팀에서 일할 때는 신관 암센터를 준공했는데 열심히 준비하여 준공 기념식을 무사히 마치고 암센터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을 보던 순간 등 모든 장면이 또렷하고 생생하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장면도 있다. 그는 총무팀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팀원들과 힘을 모아 ‘2015 슈퍼스타UUH’를 준비했던 당시를 회상한다.

“총무팀 전 직원이 행사 한 달 전부터 작은 소품까지 꼼꼼하고 빈틈없이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행사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전 행사에서 단상에 세울 국기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등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사회자가 총무팀에서 많은 것을 준비하다 보면 빠트릴 수도 있다고 해줘서 무사히 지나갔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이제 곧 울산대학교병원을 떠나는 이철형 부장이지만 병원을 향한 애정은 계속될 것이기에 울산대학교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울산대학교병원은 울산 유일의 상급 종합병원입니다. 이름만 상급 종합병원이 아니라 진료 수준 또한 큰 도시에 있는 병원과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제가 입사할 당시보다 직원 수가 10배 이상 늘었고, 병원 규모도 많이 커졌으며, 환자 진료 수준도 무척 높아졌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을 믿고 진료받아도 좋습니다.”

그에게 정년퇴임 후 계획을 물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직장 생활 중에도 틈틈이 유럽, 미주, 아시아 등을 두루 여행해왔다. 정년퇴임 후 첫 번째 계획도 단연 여행이다.

“한 달 정도 유럽 배낭여행과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반도를 침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종주하는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나이가 더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끝나면 곧장 짐을 꾸려 하늘길에 오를 계획이다. 주어진 모든 임무를 완수한 그가 먼 나라에서 자유와 여유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누구보다 환하게 웃을 그날을 함께 고대해본다.

정년퇴임 앞둔
진단검사의학팀 임석군 차장

결코, 늙지 않는 청춘

울산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팀 임석군 차장에게는 꿈이 있다. 또 그는 나눔의 가치와 배움의 즐거움을 잘 아는 사람이다. 곧 정년퇴임을 앞둔 임석군 차장이 건네는 ‘나눔’과 ‘꿈’에 대한 이야기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사명감으로
정확한 검사 결과를 제공하다

울산대학교병원 진단검사의학팀 임석군 차장은 현재 진단검사의학팀에서 면역화학 검사를 맡으며 정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1984년 7월 28일, 스물네 살의 청춘이던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사해 지금까지 울산대학교병원 임상병리사로 근무해왔다. 임상병리사는 여러 가지 검사를 수행하고 이를 분석해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일을 한다. 입사 초기에는 주로 야간당직 검사 업무를 담당하다가 성장하는 병원과 함께 차츰 신입직원들이 늘면서 주간 업무를 맡게 됐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는 팀장 업무를 맡았다. 진단검사 업무 영역은 그가 입사한 시절에 비해 훨씬 세분화하고 전문화됐다.

“진단검사 영역에서 새로운 검사가 많아졌습니다. 혈액만 채취해도 수백 가지 검사를 하는데, 보통은 잘 모르시죠. 입사 당시와 비교하면 큰 변화입니다. 검사 종류는 다양해지고 유전자 검사, 이식 검사 등 새로운 검사도 많아졌습니다.”

그가 입사했을 당시만 해도 현대중공업에서는 종종 현장 추락사고가 발생했다. 울산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오는 환자가 많았는데, 울산 지역에 혈액이 부족한 탓에 그는 부산, 대구 등으로 혈액을 구하러 다니곤 했다.

“지금은 사고도 일어나지 않고 혈액도 부족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어려움이 좀 있었습니다. 다행히 혈액을 구해 수혈하고 그 환자가 완쾌해 퇴원할 때 고생한 보람을 느끼곤 했습니다.”

임석군 차장은 질병의 원인을 찾아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확하고 신속한 검사 결과를 제공하는 것을 업무의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그리고 늘 가족의 검체를 검사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진단검사의 중요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검사 결과의 정확성도 무척 중요합니다. 정확하고 신속한 검사 결과를 의료진에게 제공하는 것은 제 첫 번째 업무이자 가장 중요한 업무입니다. 매 순간 가족의 검체라고 생각하며 올곧은 마음가짐으로 업무에 임했습니다. 하나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한 단계라도 건성으로 하면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 업무는 환자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기에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왔습니다.”

가슴에 꿈이 가득한 꿈 부자

임석군 차장은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한다. 이토록 이른 시간에 출근을 서두른 지 어느덧 십 년째다. 그의 이른 출근에는 강제성이 없다. 스스로 정한 규칙이자 습관인 셈인데 여기에는 그의 특별한 업무가 숨어 있다.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채혈실 앞에서 키오스크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이들을 돕습니다. 한 마디로 채혈실 도우미지요(웃음). 키오스크는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등장했는데, 이런 기계가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에게는 낯설고 서툰 것이 당연합니다.”

임석군 차장은 그의 삶에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곧 울산대학교병원을 떠나는 그가 울산대학교병원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건네는 이야기가 살갑게 다가오는 이유다.

“제가 눈에 띄는 활동이나 큰 기부 등을 하는 건 아니지만 늘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자’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물질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꾸리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건네야 조금은 따뜻한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마음에 여유를 갖는다면 봉사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각종 봉사활동도 해보면 좋겠습니다.”

임석군 차장은 병원 직원들과 끈끈한 관계를 자랑한다. 곧 직장동료라는 관계는 끝나지만 돈독한 인간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에게는 오랜 꿈이 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가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언제든 반드시 떠날 생각이다. 이 밖에도 그에게는 버킷리스트가 많다. 숲해설가, 서예, 악기 한 종류 다루기, 요리 등 10개 정도다. 퇴임 후 이 모든 것을 차근차근 배워갈 계획이다.

“울산 동구청에서 하는 평생 교육 프로그램이 많더군요. 시간이 많이 생겼으니, 여유를 갖고 배움의 즐거움을 누려보려고 합니다.”

‘꿈꾸기를 멈추는 순간 청년이 아니라 노인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 꿈꾸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꿈꾸기를 멈추는 순간부터 나이가 드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여전히 근사한 꿈을 꾸는 임석군 차장은 결코 나이 들지 않을 것이다. 그의 찬란한 내일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