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외투가 되고 싶다

김민정

수개월 전 일이다. 오후 햇살이 구석구석 스미는 나른한 카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한 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으레 그렇듯 가족, 일, 사랑, 우정, 관계, 사람, 성찰 등 보편적인 삶에서의 고민과 희로애락이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기부’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의 가족은 매월 일정 금액을 기부한다고 했는데, 금액이 생각보다 커서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그렇게 많은 금액을 기부한다고요?”

금액의 많고 적음은 상대적인 거니까,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많은 금액을 착하게 사용하는 언니네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섬광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번쩍하는 순간은 제법 있었다. 산을 오르거나 조깅을 하며 쓰레기를 줍는다거나 유명인의 기부 뉴스를 접할 때, 구세군 자선냄비를 마주할 때, 대한적십자사의 지로용지를 받는 순간, 이 모든 찰나에 나는 움찔하고 만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꾸리다가 잠시 숨을 고르게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런 때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안갯속에서 매 순간 사투를 벌이는 생계형 노동자였다가 ‘아, 사실 나도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며 ‘진짜 속마음’을 마주하는 것이다. 어쩐지 삶의 방향을 안내해주는 이정표를 만난 듯하다.

진지하게 생각해본다. 내 삶이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지…. 돌이켜보면 봉사활동이나 재능 기부를 몇 차례 시도했지만 성실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10년 넘게 매월 아주 적은 돈이 통장에서 빠져나가며 해외 결식아동을 돕고 있지만 이마저 자발적이라기보다 어린이를 돕는 재단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여동생의 권유에 따른 결과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이 알량한 행위가 나를 지탱해주는 단단한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종의 자기 위안이 되고, 입 밖으로 꺼낸 적도 없고, 자랑할 일도 아니기에 누군가 알아줄 리 만무하지만,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온라인 장터에서 돈을 받고 물건을 팔았을 때보다 ‘무료 나눔’했을 때 더 기쁘고 충만했다.

나누며 산다는 것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걸까. 순수한 기쁨은 ‘나눔’에서 온다는 누군가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탈무드에는 남을 행복하게 하는 일은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뿌리는 자에게도 그 향이 묻어나기 때문이라는 건데, 잘 모르긴 해도 이 마음을 두고 한 말이겠지.

40대, 소위 말하는 중년, 어느새 불혹마저 몇 해를 넘긴 나이다. 요즘 갑자기 눈물 날 것 같은 감정에 사로잡힌다거나, ‘인생이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사는 것’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지배당할 때가 많다. 겉으로는 최대한 티 내지 않고 다독이며 지내지만, 문득 ‘왜 이토록 아등바등 전전긍긍 살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한탄할 때가 많다. 하지만 내 속 저 깊은 곳에서는 나는 자신을 무지 좋아한다. 다시 태어나도 ‘나’로 살고 싶을 만큼 내가 좋다. 아마 늘 종종대는 중에 숱하게 뾰족하고 예민해지면서도 잊지 않으려는 마음 하나가 나를 나로서 좋아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순둥순둥 부드럽고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마음, 매서운 날씨에 추위에 떨 누군가에게 두둑한 외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모두 “열심히 사느라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모르는 모든 이에게 뜨거운 여름 한낮에 모아둔 온기를 담아 마음을 전한다.

글을 쓴 김민정 작가는 여성지 <여성조선>을 시작으로 <레이디경향> 기자로 일했으며, 건강 리빙 잡지 <월간 헬스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수 매체에 건강, 환경, 인터뷰 등을 기고한다. 60세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 후에는 경제적 약자인 고령자나 결식아동에게 끼니를 배달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