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병원 62병동 고유경 간호사가 지난 3월에 골수를 기증했다. 아주 적은 확률로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힘을 보탠 그의 모습은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얼굴도 마음도 모두 예쁜 간호사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아주 적은 확률로 일어난 기적

고유경 간호사는 2021년 7월에 울산대학교병원 62병동으로 입사해 이제 막 9개월 차에 접어든 새내기 간호사다. 그가 근무하는 62병동은 외과, 이식 파트 병동으로 주로 환자들의 수술 전후 간호를 담당한다. 그에게 최근 이슈가 하나 생겼다.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대학 시절 축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그날 축제의 한 캠페인에서 골수 기증을 등록했다.

“대학교 2학년 축제였어요. 한국조혈모세포은행협회에서 기증 등록자를 모집하는 캠페인이 열렸습니다. 비혈연 관계에서는 2만분의 1 확률로 유전자가 일치해 기증이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어요. 기적 같은 확률이지만, 만에 하나 일치한다면 저만이 그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값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근사한 일에 동참하고 싶어 골수 이식 희망자로 등록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골수 이식 희망자로 등록한 고유경 간호사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지냈다. 사실 분주한 일상에 잊고 지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항원이 일치하는 환자를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저에게 이런 기회가 찾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확률이 아주 낮았으니까요.”

그는 3월 23일에 입원해 골수 채취를 마쳤다. ‘골수 채취’까지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면 골수 채취 전 사흘 동안 ‘그라신’이라는 조혈제를 맞는다. 몸에 있는 골수 세포의 수를 늘려야 하기 때문인데, 그라신 부작용이 나타났다.

“그라신 주사 부작용으로 요통, 두통, 흉통을 겪었어요. 그래도 협회에서 받은 진통제를 먹으면 견딜 만한 통증이었습니다. 그러고도 기증 도중과 기증 직후에 항응고제 부작용으로 저칼슘혈증 증상이 나타났어요. 손발 저림, 입술 얼얼함, 피로가 심하게 느껴져서 겁이 나기도 했는데, 다행히 하루 지나니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회복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건 없다

골수 채취를 마친 그의 마음은 기쁨과 환희로 가득했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기간 동안 아주 귀한 것,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 즉 생명을 살리는 일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입원 기간 3일을 포함해 약 6일이라는 짧은 기간으로 제가 누군가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생명을 살리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자신을 대견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골수 기증은 무척 뿌듯하고, 정말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경 간호사는 그의 골수를 받게 된 이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누군가가 무사히 이식을 진행하고 이식 이전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2021년 기준, 실제 조혈모세포 기증까지 도달한 기증자 수는 700명에 그친다. 고유경 간호사는 조혈모세포 이식 등록을 독려한다.

“조혈모세포 이식은 고위험 급성백혈병 등 난치성 혈액질환 환자에게 필수적인 치료법입니다. 하지만 공여자가 많지 않고, 있더라도 이식 절차와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환자와 기증자 간 형질이 일치하는 확률은 2만분의 1에 불과하다고 알려져, 실제 이식까지 가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19와 저출산 여파로 공여자를 찾기가 더욱 어려워진 현실입니다. 많은 관심을 두시면 좋겠습니다.”

간호사는 환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아직은 신규 간호사인 고유경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들에게 배울 것은 물론이고 본받을 점도 많기에 늘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모든 것이 조금 서툰 처음이어서 부족하고 힘든 순간도 많다.

“제가 무지했거나 신경 쓰지 못한 부분 때문에 자책감이 들어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선배 간호사 선생님들께 많이 배우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이고 익숙하지 않아서 느끼는 보람은 더 크다.

“수술 직후 환자들은 대부분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하십니다. 처음에는 침대에서 혼자 움직이기도 힘든 상태지만 하루 이틀 뒤에는 스스로 운동도 하시면서 하루하루 다르게 회복하고 퇴원하시는 모습을 볼 때 간호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환자를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만난다고 한다. 환자와 신뢰를 형성해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환자들은 62병동에 수술받기 위해 입원합니다. 특히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보호자 없이 수술하고, 수술에 따른 통증은 물론이고 정서적 불안까지 환자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합니다. 간호사는 언제나 환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잖아요.

내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신뢰를 형성해 정서적 지지를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62병동에서 다양한 지식을 쌓아 환자에게 전문적이고 안전한 간호를 제공하는 날을 꿈꾼다. 그 꿈에 닿기 위해 나날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다. 그런 날은 당연히 올 것이다. 그는 베풀고 나누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니까, 환자를 돌보는 마음에 가짜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를 통해 고운 마음은 고운 얼굴을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알아두면 좋은 ‘조혈모세포’ 정보

Q 조혈모세포(Hemopoietic stem cell)란 무엇인가요?

A 혈액을 만드는 어머니 세포(造血母細胞)라는 뜻으로, 정상인의 혈액 중 약 1%에 해당하며,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 모든 혈액세포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세포를 말합니다. 조혈모세포는 골반, 척추, 대퇴골, 흉골, 갈비뼈 등 뼈 내부에 존재하는 골수에서 대량 생산되며, 산모의 태반과 탯줄의 혈액에도 존재합니다. 기증자의 골수나 말초혈 조혈모세포는 기증 후 2~3주 이내 기증 전 상태로 원상회복되므로 기증자의 혈액세포 생성 능력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습니다.

Q 조혈모세포의 종류를 알려주세요.

A 조혈모세포는 어디에서 채취했는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골수(BM : Bone Marrow) : 주로 골반 부위에서 골수 채취용 바늘로 채취한 조혈모세포

말초혈 조혈모세포(PBSC : Peripheral Blood Stem Cell) : 말초혈관(정맥관)을 통해 채취

제대혈(CB : Cord Blood) : 출산 시 탯줄 및 태반 속 혈액에서 채취

Q 조혈모세포 기증은 왜 필요한가요?

A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 악성림프종 등 난치성 혈액 종양은 조혈 기능에 장애가 생겨 정상적인 혈액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질병입니다. 항암제, 방사선 등으로 병든 조혈모세포를 모두 소멸시킨 후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으면 완치할 수 있습니다.

Q 조혈모세포 기증은 어떻게 할 수 있나요?

A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 방법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조혈모세포 분야 장기이식 등록 기간으로 지정한 때에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조혈모세포 기증자를 모집하는 기관은 대한적십자사, 조혈모세포은행협회,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나눔실천본부 등입니다.

기증자로 등록한 후 조직적합성항원(HLA)형이 일치하는 환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단, 기증자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조혈모세포 기증 신청은 18~40세 미만까지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