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 위에서
만난 기태 씨

박찬애 / 사진 백기광(스튜디오100)

길을 걷다 뛰다 지쳤다. 둘러보면, 곁에 아무도 없었다. 내 앞에만 돌부리가 놓여있는 거 같고 넘어진 자리가 매번 비슷했다. 어느 땐 목놓아 울어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렸고, 불안은 영혼을 잠식했다.

어린 시절,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학대를 당한 사람은 나이 들어서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다. 기태 씨는, 다른 이에게 이야기하긴 처음이라며 자신의 성장기와 복잡한 가족사에 관한 걸 털어놓은 적 있었다. 그를 안아주었다. 나도 그에게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고통스러운 내 어린 시절을 들려줬는데, 그때부터 우린 친구가 되었다. 성격과 취향이 닮았다. 우린 서로를 알아봤고, 세상에서 한편이 되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우울증 무기력이 점점 심해졌다. 숱한 결핍으로 뭘 더 어찌할 의욕이 남아있질 않았다. 아프다는 말조차 할 수 없어 늘 널브러진 채로 내가 나를 혐오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가는 길은 끝도 없는 어두운 터널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다만 새벽이었고, 밖에는 빗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폭설, 폭우, 새벽, 밤, 안개에 지독히도 약하다. 메탈리카(Metallica)의 Nothing Else Matter에 이어 레지엠(Lesiem)의 Fundamentum을 들었다. 이런 곡들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준다. 좋아하는 곡이 있을 때 그 하나를 붙들고 온종일 듣는다. 그도 그렇다. 새벽 한 시께 전화를 걸었다. 보고 싶단 말을 안 하려다가, 세 번 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그가 첫마디를 던지는 순간부터 난 깊은 위로를 받는다. 예전에는 그 사람이 내게 그 말을 했었는데, 여러 병치레를 겪고 나이가 들면서, 내 목소리엔 피곤함이 잔뜩 묻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했다.

밖엔 비가 와. 뛰쳐나가고 싶어. 그러다가 느닷없이 <어디갔어 버나뎃>이라는 영화를 봤냐고 물었다. “버나뎃이 천재 건축가야. 어쩌다 보니 사회성 제로에 문제적 이웃이 되고, 남편은 이런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해. ‘왜 누구와도 잘 지내지 못해?’라고도 해. 두 군데서 울었어. 버나뎃이 딸에게 ‘엄마는 가끔 너무 힘들다는 걸 알아줘’라고 해, 딸이 ‘뭐가 힘든데요?’ 하고 물으면 ‘인생의 따분함. 하지만 남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작은 것들에 감동하지’ 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20년 만에 만난 전 직장 동료 폴 젤리네크 앞에서 쉼표도 없이 수다를 늘어놓는데, 폴은 점점 안타까운 표정이 돼. ‘너 같은 사람은 창작을 해야 해. 그러려고 세상에 태어난 거고.’ 기태 씨는 “흠, 왜 울었는지 알겠네”했다. 나도 딴 사람들 이야긴, 솔직히 퍽 따분했다.

“뉴스엔 어떤 청년이 자살하려고 다리 난간 위에 올라간 게 나왔어, 지나가던 여성이 달려가 막았나 봐. 부모님을 생각해야지 이러면 어떡하냐고 야단쳤대. 그 말에 청년이 울더래. 그럴 땐 그냥 ‘많이 힘들었구나’ 하면 될 것을. 죽을 힘으로 살라는 사람들도 그래. 살 힘이 없어 죽는 건데, 그 힘으로 살라고? 어떤 희망도 없어서… 한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려 할 땐… 주위 사람들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말끝에 급기야 내가 흐느끼고, 기태 씨는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렀다. “내가 지금 올라갈게. 기다려.” 그러고는 그 새벽 출발해 무려 4시간 반을 달려 내게 도착했다. 보자마자 “힘들었구나, 당신.”

하며 안아주어서, 나는 다시 어린아이처럼 꺽꺽 울었다.

기태 씨는 내 눈을 보고,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야. 예술가라는 걸 잊지 마. 그림, 사진, 영화, 음악, 뮤지컬, 폭설, 소나기, 좋으면 푹푹 빠져보는 거야. 난 잡초 같아서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데 당신은 온실 속 화초 같아서 온도, 습도, 햇빛, 흙을 잘 알고 잘 키울 사람이 다뤄야 해. 그럼 독특하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데, 그게 아니면 죽어버리지.”

기태 씨는 나를 살려내기 위해, 자기 삶의 남은 시간을 쓰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잘했어. 아주 좋아. 예뻐. 훌륭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고, 내 모든 걸 받아들였다.

그림을 그려보라며 온갖 화구를 보내주더니, ‘라이카 카메라를 사줄게, 사진 좀 찍어봐’, ‘커피 보냈다’ ‘오렌지 보냈다’ ‘입맛 없어도 먹어봐, 배달앱에 그쪽 주소로 음식 주문했어’ 등등 나를 챙겼다. 든든한 보호자처럼. 태어나 처음, 나는 안전해지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는 이제 내 곁에 영영 없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그대가 타이를 매주었으면, 찌개를 끓여놓고 불 켜진 집에서 날 맞아주었으면, 햇살 한가득 들어오는 거실에서 그대의 무릎베개에 누워 단잠을 잤으면, 닮은 사람끼리 함께 살아보자… 그렇게 말해놓고,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는 떠났다. 그리움이 사무친다.

기태 씨, 안반데기로 별 보러 가자 했었지. 내가 가볼게. 내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유독 반짝이는 별이 있다면 당신이라 생각할게. 인생길, 그 위에서 어느 한 시절 당신과 친구이고 연인이었던 시간은 영광이었고, 따스했어. 고마웠어, 당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글을 쓴 박찬애 시인은 『꼬치꼬치 선생님과 함께 쓰면 일기가 술술 써지네』라는 책을 냈다. 인터넷과 TV 방송에서 글쓰기를 강의하거나, 칼럼을 쓴 바 있다. 인생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중 어떤 사람은 더 깊고, 간절하고, 소중하다. 가까이 있을 때 온 마음을 내주어야 한다. ingcool@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