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길은 스스로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를 얻으려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각 분야에서 파트너십이 반짝였던 이들의 이야기.

편집부

조선 최고의 콤비
정조 & 정약용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正祖)는 역경을 딛고 왕위에 올라 천재성, 노력과 끈기,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조선을 이끈 군주로 꼽힌다.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丁若鏞)은 정조의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둘의 만남은 세자를 책봉한 기념으로 과거 시험이 열린 날이었다. 정약용은 22세에 과거에 응시했는데, 정조는 고만고만한 답안지들 사이에서 특출났던 정약용의 답안지를 발견하고 흐뭇해했다고 한다. 문과 시험에 급제한 정약용은 관리가 되어 규장각에서 일했다. 이후 정조와 정약용은 함께 화성 건설 계획을 세우고, 정조는 정약용에게 화성 설계를 맡겼다. 정약용은 화성 건설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며 빠르고 효율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기구와 장비 등을 새로 고안해냈다. 도르래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손쉽게 들어 올리는 대형 ‘거중기’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정조의 효심과 정약용의 지혜를 담은 수원 화성이 탄생했고,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다산 정약용의 천재성을 알아본 정조, 그리고 그를 위해 헌신한 정약용. 지금의 수원 화성을 있게 한 두 천재 덕분에 우리는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아름답고 수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수원 화성을 만날 수 있다.

예술가와 후원자
반 고흐 & 테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는 네덜란드 출신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다. ‘별이 빛나는 밤’, ‘빈센트의 방’, ‘해바라기’, ‘밤의 카페’ 등 특유의 화풍으로 온 세계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생전의 그는 의사 가셰나 시냐크 등 극히 소수의 사람에게만 평가되는 등 크게 인정받지 못한 화가였다. 그런 그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후원자인 동생 테오 덕분이었다. 테오는 고흐에게 절대적인 존재였다. 파리에서 미술상으로 활동하던 테오는 형을 위해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고흐의 예술 인생의 동반자였다. 가난했던 고흐는 테오에게서 받은 돈으로 물감과 캔버스를 사고 모델을 구해 그림을 그렸다.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형제였으며, 예술적 감수성을 공유했다. 실제로 둘이 주고받은 668통의 편지 속에는 그림에 대한 고흐의 고민과 그가 바라본 세상 등이 담겼고, 테오는 형을 위로하고 응원하며 정서적으로 지지했다. 그들 사이에는 ‘우리’라는 굳건한 결속력이 있었다. 그렇게 테오의 존재는 고흐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었을 것이다.

열등감은 나의 힘?
모차르트 & 살리에리

둘의 이름은 언제나 함께 거론된다. 영화 <아마데우스(Amadeus, 1984)>는 천재 음악가인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그린다. 18세기 말 유럽 음악의 중심, 비엔나 왕실에서 장기간 궁정악장을 지낸 살리에리는 새롭게 떠오르는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를 내내 못살게 굴다가 결국 독살하고 자신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1등인 모차르트를 질투하고 시기하는 2등에 불과하지만, 영화는 허구일 뿐이다. 실제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37편의 오페라를 작곡한 이탈리아의 음악가이자, 당대 유럽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던 음악 교육가였다. 그뿐만 아니라 베토벤과 슈베르트 등을 가르친 위대한 스승이었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관계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건 무엇일까. 1등, 경쟁, 금메달 등 타이틀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각자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 주위의 모차르트와 경쟁하고 비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근사한 인생이라는 사실 아닐까.

국경을 초월한 우정
이상화 & 고다이라 나오

영혼이 통하는 데 장벽은 없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스피드스케이팅을 대표하는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의 우정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혔다. 현역에서 은퇴한 이상화 선수는 해설위원으로 고다이라 선수의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를 지켜봤는데,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다이라 선수가 38초09의 다소 저조한 기록을 거두자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이겨낼 줄 알았는데, 심리적인 압박이 아주 컸던 것 같다”라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경기를 마친 고다이라 나오 선수는 공동 취재구역에서 취재진에게 “Where is 상화?”라고 물으며 이상화 선수를 찾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서툰 한국어로 “상화, 잘 지냈어? 보고 싶었어요. 저는 오늘 안 좋았어요”라고 영상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둘의 따뜻한 우정은 앞서 평창동계올림픽에서도 연출됐는데, 경기 종료 후 생애 첫 금메달을 차지한 고다이라 나오 선수가 은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모습은 경쟁을 넘어 인류애를 보여주는 감동 그 자체였다.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지만 국가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둘의 우정은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