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신철경 교수

결국은 해피엔딩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순간으로 이루어진다. 크고 작은 선택이 켜켜이 쌓여 완성되는 그림이 인생일 것이다. 울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신철경 교수의 지난 모든 선택은 결국 그를 해피엔딩으로 이끌고 있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울산대학교병원에 오기까지

울산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신철경 교수는 올해 울산대학교병원에 합류한 신임 의료진이다.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에 오기까지 다소 특별한 히스토리를 가진 인물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교육을 전공하고, 의사 자격과 함께 한의사 면허까지 보유하고 있다. 그의 지난 시간은 옳은 선택과 바른 결정을 위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첫 번째 고민은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한의대를 가게 된 일이다.

“전 문과 출신이고,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는 고등학생이었어요. 아버지께서 공무원이셔서 서울대학교에 가서 행정고시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합격해서 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호하는 직업으로 한의사가 주목받으면서 부모님께서 한의사의 길을 권유하셨어요. 부모님의 적극적인 권유에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동국대 한의대에 입학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학문이었기에 힘들고 어렵게 공부를 이어갔지만, 졸업 즈음 다시 진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원의와 한방병원 봉직의의 삶을 앞에 둔 고민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한의원을 개원하기보다 다양한 환자를 보고 싶은 마음에 한방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 다시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생각보다 제가 한의사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작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한방병원을 찾는 환자는 대부분 기저질환이 많은데, 환자와 질환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고, 알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의사가 되어 관리가 아닌 치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요. 더 늦기 전에 의대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신철경 교수는 한의대 재학 시절에 만난 남편과 결혼해 임신한 상태였다. 상황이 녹록지 않았지만, 더 늦어지면 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어 의전원 준비를 시작했고, 결국 충남대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의전원 재학 시절은 생후 9개월 아이를 키우면서 매주 시험을 보는 등 육체적, 정신적으로 말할 수 없이 힘들었지만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그를 버티게 했다. 졸업 후에는 복수 면허자로서 개원의와 수련의의 삶 앞에서 다시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주변에서는 “복수 면허자이니 개원하면 경제적으로 훨씬 이득일 것”이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제대로 알고 제대로 치료하고 싶었다. 이런 올곧은 신념이 그를 울산대학교병원으로 이끌었다.

함께 힘을 모아 치료하는 질환

“의대에 입학할 때부터 내과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중에서 혈액종양내과를 선택한 건 ‘한의대 6년, 한의사 4년의 경험이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가 아닐까’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신철경 교수는 혈액종양내과에서 췌장암, 담도암, 폐암 등을 전문으로 진료한다. 아무래도 암 환자들을 만나다 보니 늘 그들의 예후와 생존율을 고민한다. 그는 해당 질환에서 몇 가지 치료 방법을 강조한다. 췌장암과 담도암은 예후가 좋지 않다고 알려진 암이다.

“췌장암과 담도암의 예후와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합니다. 췌장암에서는 선항 암치료(Neoadjuvant Chemotherapy)라고 해서 수술 전 암의 크기를 줄이는 목적으로 수술 전 항암치료, 수술, 항암치료 순으로 시행합니다. 적응증이 되는 환자에게는 외과와 상의하여 많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폐암은 표적항암제인 타이로신 키나제 억제제(Tyrosin kinase inhibitor)와 면역 치료제가 나오면서 생존율이 매우 증가했다. 정확한 병기 설정과 치료 방향에 대해 암 진단 이후 다학제에서 통합진료를 주 2회 정도 진행한다. 다학제 통합진료는 그가 강조하는 대목이다.

“호흡기내과, 혈액종양내과, 영상의학과, 흉부외과, 병리과, 방사선종양학과, 핵의학과 교수님들이 모여서 의논하고 환자와 보호자에게 현재 상태와 앞으로의 치료 방향을 설명하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췌장암, 담도암 환자는 소화기내과와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필요하면 내시경 및 스텐트 시술을 의뢰하고, 폐암 환자는 방사선종양학과와 항암치료를 하면서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논의를 자주 합니다. 다학제 통합진료는 환자나 의료진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하게 설명하며 신뢰를 전하다

신철경 교수는 그가 제시한 방향대로 치료에 잘 따라줘 경과가 좋은 환자를 볼 때 ‘의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 나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만사에는 명암이 있듯 힘든 순간도 존재한다. 경과나 예후가 좋지 않은 환자를 볼 때 마음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그럴 때는 앞서 경험한 좋은 순간, 보람의 순간의 느낌을 차곡차곡 기억해뒀다가 다시 힘을 낸다.

신철경 교수는 환자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한다. 특히 마음 한편에 남는 건 결과가 좋지 않은 환자들이다. 치료 결과가 좋은 환자들은 그를 만나지 않았어도 좋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겸손한 마음에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작년에 만난 25세 남자 환자예요. 이미 복막에 암이 퍼진 상태였고 마지막에 복수와 흉수 조절이 안 되어서 중환자실로 옮긴 환자입니다. 환자가 떠나기 전날, 의식이 온전해서 ‘저는 여기가 마지막인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라고 글을 쓴 뒤 저를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던 아버지가 아들을 먼저 보내는 마음이 어떨지 짐작도 하지 못해 더 마음 아팠던 것처럼, 남은 부모의 마음이 걱정돼 젊은 환자는 더 힘듭니다.”

그는 환자를 대할 때 무엇이든 최대한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질병을 제대로 정확히 아는 것이 기본이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의외로 환자들이 자신의 진단명이나 병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 환자가 고령이라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래 때 젊은 보호자를 오게 해서 병과 치료 방향을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합니다.”

치료법이나 시술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모습을 보일 때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환자들에게 당부한다. 울산대학교병원의 의료진과 의료 수준은 충분히 믿어도 좋으니 신뢰하고 찾아와 달라는 메시지다. 울산대학교병원이 지역거점 중심병원으로 ‘환자를 잘 보는 병원’이라는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길 바라고, 여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1년 근무했을 때의 일이에요. 환자 차트 옆에 지역이 적혀있는 게 처음엔 의아했어요. 알고 보니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오기 때문에 너무 먼 거리에 살거나, 다음 날 퇴원 예정인 환자라면 미리 알려야 할 것이 많아 지역을 적어두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울산대학교병원 의료진은 모두 서울의 빅 센터(Big Center)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습니다. 치료 방향도 같고, 치료 약도 같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도 같은 치료를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치료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Life is C between B and D”라고 말했다. 즉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탄생(Birth)과 죽음(Death)사이에 선택(Choice)이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 의사로서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간 신철경 교수의 모든 선택은 옳았다. 앞으로의 모든 선택도 그럴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