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를 찾아서

한미영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아침에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 준비한 뒤 출근한다. 지각하지 않으려 동동거리고 파닥이느라 마음이 바쁘다. 자, 이제 주어진 하루치의 업무에 돌입한다. 꼬르륵꼬르륵 아우성치는 위의 소란을 점심 식사로 잠재우고 오후 업무에 돌입한다. 시선은 컴퓨터 모니터를 향하고 손가락은 검은 바둑알처럼 촘촘한 키보드 위를 춤추듯 유영한다. 오늘은 운 좋게도 정시에 퇴근할 수 있다.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섰고, 집에 도착하니 저녁 8시. 저녁 식사를 하고, 씻고, 밀린 빨래와 간단한 집 청소를 마치니 시곗바늘은 밤 10시를 가리킨다. 이제 침대로 향할 시간이다. 휴대전화 속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참 이상한 노릇이다. 분명 쉬지 않았고 놀지 않았으며 한순간도 멈춘 일이 없는데, 오래전 성장을 멈추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주어지는 하루를 허투루 보낸 적 없고 시간 낭비를 한 적도 없이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는데, 마음 한편이 허전하고 공허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이토록 분주한 일상을 꾸리는 나라면 분명히 터질 듯 충만해야 할 노릇인데, 어찌 된 영문일까? 옳거니. 나의 일상에는 ‘무엇’이 빠졌다. 여기서 ‘무엇’은 취미일 수도, 꿈일 수도, 삶의 목표일 수도 있다. 그것은 곧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다.

어릴 적 작은 가슴에 꿈을 품고 살았다. 내게 꿈은 너무 소중하였으므로 혹여 짓밟히기라도 할 새라 함부로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것은 글을 쓰는 사람,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늘 책을 읽고 습작을 하며 소위 ‘노력’이라는 걸 했다. 그 노력의 과정은 고스란히 취미로 남았다.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책 읽기” 혹은 “글쓰기”라고 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아보면 눈이 부시게 찬란한 시절이었다.

꿈이 일이 된 지금의 나는 ‘빛바랜 회색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었으나 결국 꿈을 잃은 나는 시시하고 재미없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일이 곧 취미”라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틀렸다는 걸 아프게 깨달았을 뿐이다. 일은 취미가 될 수 없다. 일에는 공(公)의 요소가 다분하고, 돈과 깊게 관련하며,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품은 속성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반드시 취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세상만사 다 귀찮고 무기력해져 엎어져 있을 때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이다. 홀로 숨어들고 싶은 어느 날 절대 어둡지 않은 동굴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에게 의지하다 뒤통수 세게 맞았을 때 얼얼한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줄 것이다. 바쁜 시절 다 지나고 은퇴 후 펼쳐지는 심심하고 단조로운 삶에 즐거움이 되어줄 것이다. 절망과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어렵지 않게 나를 건져 올릴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나는 다시 꿈을 꾸고 마침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고 싶다. 누군가 “꿈은 명사가 될 수 없다”고 했기에 구체적으로 동사의 꿈을 찾아보려고 한다. 가령 ‘나눔과 봉사를 실천하며 가슴에 열정을 품겠다’ ‘퀼트를 즐기는 귀여운 할머니 되기’ 같은 꿈 말이다.

다양한 경험과 취미 활동을 통해 인생이 풍성해진다. 그제야 이루고 싶은 목표가 생긴다. 반대로 꿈 혹은 목표가 있어 취미가 탄생할 수도 있다. 늦지 않았다. 인생을 조금 더 즐겁게 살려는 노력은 곧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길이며, 자존감이 튼튼해지고 견고해지는 확실한 방법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무엇에도 끄떡없는 평생 친구를 만드는 일이다. 그 친구는 모진 비바람 속에서 결코 흔들림 없는 알맹이가 되어줄 것이다.

글을 쓴 한미영 작가는 여행 잡지 <뚜르드몽드>를 시작으로 건강 리빙 잡지 <월간 헬스조선>, 부모와 아이 중심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맘앤앙팡> 기자로 일했으며, 다수 매체에 건강, 여행, 에세이 등을 기고한다. 고상하고 우아하게,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사람으로 완성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