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가 즐겁다, 인생이 재밌다

슬기로운 간호사생활

음악을 두고 흔히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른다. 음악에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위대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악기 연주를 통해 인생이 즐거워진 다섯 간호사를 소개한다. 2017년 울산대학교병원 내과계 중환자실에서 만난 이들은 4년 뒤 밴드 <슬기로운 간호사생활>을 결성했다. 줄여 ‘슬간생’이라고 부르는 이 밴드는 ‘음악’이라는 넓고 웅장한 세계를 탐닉하는 중이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밴드 ‘슬기로운 간호사생활’의 탄생

이상향 밴드 구성원들은 현재 다른 부서로 로테이션 되어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원래 내과계 중환자실로 함께 입사한 동갑내기 동기들입니다. 밴드를 시작한 계기는 2020년에 첫 방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 덕분이었습니다. 드라마는 동기 의사 5명이 밴드를 만들어 일과 음악을 함께 즐기며 요즘 말로 ‘워라벨’을 실현하는 내용인데요. ‘음악은 잘 모르지만 나도 저렇게 동기들이랑 밴드 해보고 싶다, 너무 멋있다’라고 동경하게 되었고, 1년여 조른 끝에 기회가 생겨 작년 7월경부터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동기 5명이 밴드를 시작했습니다. 악기를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우리이기에 실용음악 학원에 등록해 각자 맡은 포지션의 악기를 배우고, 두 달에 한 곡 정도 새로운 합주곡을 연습한 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시간을 내서 합주하면서 웃고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연주할 수 있는 합주곡도 몇 곡 없지만 합주하는 그 순간만큼은 여느 밴드 못지않게 나름 전문가(?)답고 멋있답니다(웃음).

음악은 내 인생에 OO이다

김지원 음악은 내 인생에 ‘어디로든 문’입니다. ‘어디로든 문’이 뭐냐면요, 만화 <도라에몽>에 등장하는 문인데요. 그 문만 있으면 순식간에,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언제어디서든 이동할 수 있습니다. 너무 우울하고 갑갑할 때 음악으로 위로받고 바로 기분이 나아진다든지, 막막한 상황이 닥쳤을 때 가슴 뻥 뚫리는 음악을 들으면 속이 시원해진다든지, 돌아가고 싶은 시절의 음악을 들으면 순식간에 그때로 데려다준다든지… 심지어 쉽게 여행을 갈 수 없는 지금 같은 때에도 ‘파리에서 눈을 뜨는 아침의 Playlist’를 들으면 가본 적도 없는 파리에 있는 느낌이 들게 해줍니다. 그래서 제게 음악은 필요할 때마다 꺼내쓰는 ‘어디로든 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향 음악은 내 인생에 선물입니다. 음악은 행복이라는 선물을 주고, 심란하고 우울할 때는 위로라는 선물을 주고, 친구들과 합주할 때는 벅참이라는 감동의 선물을 주는 존재입니다.

심혜원 음악은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추억입니다. 저는 최신 음악보다 예전 음악들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요, 학창 시절 많이 듣던 음악들은 지금도 잊어버리지 않고 흥얼거릴 수 있습니다.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들을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연주해보며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하는 이 밴드도 먼 훗날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겠죠.

이소정 음악은 내 인생의 활력소입니다. 음악이 특별히 좋아서 밴드를 하기보다 친구들과 함께 합주하며 느끼는 설렘과 성취감으로 인생에 활력이 도는 것 같아요.

박수진 음악은 내 인생에 위로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중학교 때는 기타동아리와 노래 동아리 활동을 하며 어릴 때부터 음악은 항상 제 옆에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는 위로를, 화가 나거나 진정이 되지 않을 때는 안정감을 주는 것이 음악입니다.

인생에서 취미가 필요한 이유

김지원 우연히 뜨개질을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작은 목도리를 뜨는데, 처음 시작하는 데다 독학으로 하려니 쉽지 않았어요. 퇴근 후 짬을 내 뜰 때마다 ‘일도 힘든데 이걸 왜 하고 있나’라고 생각하면서 겨우겨우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완성하고 보니 ‘해냈다'라는 생각에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즈음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무척 많았는데, 그 이유도 찾게 되었고요. 출근하면 매일 새로운 일이 펼쳐지지만 조금씩 연차가 쌓이면서 아무래도 신규 시절만큼 모든 것이 새롭진 않습니다. 자연스레 성취감을 느낄 만한 일이 줄어들고 삶이 단조로워지면서, 일은 큰 문제 없이 해내지만 사소한 일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게 된 것이었죠. 요즘은 밴드 모임을 포함해 재봉틀을 배우는 중입니다. 여러 취미를 기분갖게 되면서 이전보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완화됐고 무엇보다 직장 스트레스가 침범할 만한 공간 없이 일상이 다른 것으로 채워진다는 점도 인생에 취미가 중요한 이유인 것 같아요.

이상향 일하면서 취미 생활을 하는 게 더 바쁘고 힘들 것 같지만, 취미 생활이 생기면 일이 끝나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러 간다는 생각에 일하면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퇴근 이후까지 이어지지 않아요. 스트레스받은 원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셈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삶에 활력이 생긴다는 거예요. 내가 그동안 하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고 이루어나가면서 더 발전해가는 나의 모습에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이 더 가치 있게 느껴지고 풍성해져요.

박수진 저는 대학교 때까지도 꾸준히 하는 취미나 여가 활동이 없었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여유가 생길 때쯤 마음 맞는 동기들과 밴드를 만들어 처음 취미를 가졌는데요. 지루한 삶에 생기를 주고, 힘들고 우울할 때는 환기가 되더라고요. 스트레스 덜 받고 병원 생활을 즐겁게 하는 데 동기들과 함께하는 밴드가 톡톡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심혜원 작년 여름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동기들과의 만남도 뜸해질 무렵 ‘밴드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내어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고 생각하니 설레고 신이 났지요. 코로나 때문에 침체하고 우울했던 삶에 활기를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쉽진 않았지만 각자 맡은 악기를 배우고, 서툰 실력이지만 첫 합주곡을 맞춰볼 때는 음악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모두 재밌었어요. 이런 모든 과정이 매일 반복되는 3교대 생활에 활력을 주었지요. 결국 취미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 생활에 비타민 같은 존재예요.

환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김지원 중환자실 환자들과 마주하며 많이 하는 생각은 환자의 병이 마음마저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몸을 속일 수 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는 힘든 시기일수록 우울한 기분이 나를 덮쳐서 몸까지 갉아 먹지 않도록 취미활동으로 제 뇌를 속여버리거든요. 환자들도 질병으로 인한 슬픔, 가족을 위한 걱정 같은 것을 너무 오래 안고 있지 않으면 좋겠어요. 소소한 것이라도 효과 만점이니 취미를 통해 우울한 감정을 싹 잊어 버리고 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이상향 환자들은 오래 투병하며 많이 지치고 힘든 상황입니다. 건강했을 때보다는 취미 생활을 즐기기가 쉽지 않겠지만 잠시라도 아픈 상황을 내려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또는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삶에 새로운 활력을 채워나가시면 좋겠습니다. 분명 어느 순간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심혜원 음악의 음, 악기의 악 자도 모르는 우리가 모여서 하나의 곡을 연주해내고 작게나마 사람들 앞에서 연주회도 하며 어느덧 취미로 즐기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설레는 일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환자들도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싶었지만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실천해보길 권합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게 처음에는 스트레스도 받고 생각처럼 되지 않아 속상하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집중하는 제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모두 일상에서 조금이나마 웃을 일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소정 반복되고 무료한 일상에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도 작은 목표를 세워 해내는 것, 가까운 이들과 공통의 목표를 이루며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행복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을 느낍니다.

박수진 저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취미가 생겼지만, 좀 더 빨리 취미를 만들었다면 삶이 훨씬 재미있었을 거 같습니다. 현재는 밴드, 운동 등 여러 취미 생활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즐길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취미를 가지세요. 뿌듯함, 성취감으로 인한 즐거움, 반복되는 지루한 삶에 활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꾸는 꿈

김지원 친구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합주 시간은 매번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 베이스 수업을 이어가면서 선생님이 악보를 읽어주지 않아도 되는 경지에 이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상향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환자를 간호할 것이고, 밴드 활동도 선생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독립해서 악보를 보고 각자 맡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워라벨 라이프를 이어갈 거예요.

심혜원 거창한 계획은 없어요. 현재는 돌아가면서 하고 싶은 합주곡을 정해 순서대로 배우는 중인데요. 제가 제일 마지막에 곡을 정하는 순서이기 때문에 그사이에 실력을 키워 FT아일랜드나 자우림 같은 밴드의 곡을 신나게 즐기면서 연주하고 싶습니다.

이소정 병원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만난 동기들과 오래오래 서로 의지하고 격려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로 평생 남고 싶습니다.

박수진 꾸준히 각자 맡은 악기를 배우며 밴드 활동을 유지할 거예요. 그리고 실력을 키워 학원에서 열리는 가족, 지인 초청정기 공연에서 더 멋진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밴드 모임은 늘 즐기면서 할 겁니다. 동기들과 함께하는 취미 생활로 서로의 에너지 소진을 예방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