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하루
건강한 습관

글 류진 / 사진 백기광(스튜디오100)

어느 날부터 걷는 게 불편했다. 왼발을 내딛을 때마다 허리가 아팠다. 요통이 시작되기 며칠 전 불편한 신발을 신고 무리해서 걸었던 것이 생각났다. ‘쉬면 나아지겠지.’ 몇 날이 지나니 통증은 덜한데, 움직일 때 아프고 껄끄러운 건 가시지를 않았다. 근력이, 운동량이 부족한가? 싶어 PT를 등록했다. 마침 몸 이곳저곳에서 출렁이는 살과 지방이 아주 거슬리던 차였다. 첫 수업은 처참했다. 런지를 할 때마다 햄스트링이 올라와서 픽픽 쓰러졌다. 보디프로필을 준비하는 젊은 무리 속에서 혼자 노인처럼 더디게 움직였다. 비참했지만(과장 없는 감정이다) ‘오랜만에 하는 거니까…’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수업에서도 딱히 나아지는 것이 없자 트레이너가 백기를 들었다. “회원님, 운동 말고 재활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아요.”

소개받아 찾아간 곳엔 병원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든 고질적 통증 환자들이 알음알음 소개받아 찾아오는 테라피스트가 있었다. 선생님은 두꺼운 해부학 책과 아나토미 피규어, 반짝 윤이 나는 플로어와 함께 나를 반겨줬다.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받은 90분 동안 나는 ‘저 선생님이 내 몸 어딘가를 만지거나 두들겨줄 거야. 마사지도 해주겠지?’ 하고 기대했다. 내가 첫 시간에 한 건 의자에 앉기, 바닥에 앉기, 걷기, 눕기, 스마트폰 들여다보기 같은 일상생활의 시연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물어보면 묻는 대로 답을 했다. 군살을 감추려고 입은 티셔츠까지 벗기고 등의 생김을 관찰하던 선생님이 내놓은 결론은 이랬다. “척추가 막대기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어요. 목은 x번 경추와 x번 흉추가 비틀어져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 처참한 몸 상태의 원인은 잘못된 습관의 축적이다. 나는 의자에 앉을 때마다 한쪽 다리를 접고 앉는다. 혹은 무릎 아래에 두어야 할 발목이 항상 의자 뒤편, 엉덩이 아래로 넘어가 있다. 매일 밤 목을 지지대 삼아 침대 헤드에 비스듬히 누워 1-2시간가량 스마트폰을 하다 잠 드는 루틴, 걸을 때 상체는 가만히 두고 하체만 움직이는 습관, 집중할 때 몸에 힘을 잔뜩 넣고 숨까지 참는 버릇,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이는 대신 갑자기, 크게, 불쑥불쑥 움직이는 성향…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무수한 이 나쁜 습관의 총체가 곧 나와 오늘의 내 (비틀어지고 굳은)몸을 만들었다.

꽤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받은 열 번, 900분의 수업 동안 나는 번번이 억장이 무너지는 순간과 마주했다. 숨 쉬는 법, 걷는 법, 앉는 법, 일어나는 법 같은 본능적이며 반사적인 움직임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익히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수업 때마다 스스로와 선생님에게 “나, 지금까지 뭘 하고 산 거지? 왜 이렇게 내 몸을 박해하는 방식으로 움직였지?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큰 움직임들, 그 움직임이 주는 성취감이나 개운함은 다 거짓이었나?”라며 포효하듯 하소연했다. 그냥 ‘헤이 마마’ 춤동작을 배우는 게 더 쉽겠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내게 선생님이 건넨 위로. “삼십 몇 년 동안 익힌 움직임의 관성을 몇 주 동안 바꾸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어떤 동작을 고친다고 자꾸만 뭔가를 더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잘못 ‘더한’ 습관을 몸에서 빼는 연습을 하는 거니까.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알아차리기만 하세요. 나 지금 이렇게 앉아 있구나. 아, 내가 또 이렇게 비스듬히 누웠구나. 내가 또 발을 끌며 걷고 있구나. 이 정도만 알아차려도 괜찮아요.”

몸은, 몸과 습관의 관성은 쉽게 자기가 해왔던 방식을 잘 양보하지도, 쉽게 영역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나는 그간 ‘습관’과 ‘루틴’이란, 몇 주의 얄팍한 실천과 나의 지각, 신체적 능력, 그리고 좋은 책 몇 권에서 배운 지식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내가 제대로 마음먹으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걷고 일어나고 누울 때마다 내 신경을 찌르는 통증을 느끼며 처절히 배웠다. 요즘은 아주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고 납작 엎드려서 나의 습관들에 선처를 구하는 마음으로 산다. 잘못된 걸음아, 골반을 조금만 움직여서 걷고 싶은데 좀 도와주겠니? 왼쪽 다리야, 의자에 올라가고 싶어도 조금만 참아, 따위의 유치한 대화를 하면서 말이다. 오랜 (잘못된) 습관을 바꾸는 일은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그 진리를 알아차린 사람만이 그걸 바꿀 수 있는 기회 앞에 설 수 있다.

글을 쓴 류진은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더트래블러」, 패션 매거진 「코스모폴리탄」 등에서 일하며 42개국 200여 개 도시를 여행했다. 유행의 흐름을 붙잡아 소개하는 일을 하다가 지치면 야생의 대자연으로 도망친다. 자연과 도시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사는 삶을 글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