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지난 2년 동안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하지만 다시 새해가 시작했다. 누구나 새해에는 자신만의 계획을 세우고, 희망찬 한 해를 보내고자 노력한다. 이번에도 작심삼일이 됐다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처럼 건강한 습관이 나의 하루를, 내일을, 나아가 2022년을 결정짓는다. 울산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박장호 교수가 들려주는 마음 건강을 챙기는 작은 습관 이야기.

박장호(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사진 백기광(스튜디오100)

정신과 의사는 마음이 힘든 이들과 면담을 하는 직업입니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아팠다가 같이 웃었다가 합니다. 이런 과정을 지나며 환자가 자신만의 발자취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정신과 의사도 환자를 보며 짜증이나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정신과 의사는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사람이니 스스로 감정 조절을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이 앞에 있는 환자 때문에 화를 내는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것입니다.

환자와의 면담이 특히 힘들거나 또는 어쩔 수 없이 부정적인 결과를 마주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잠시 외래를 중단하고,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가지게 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업무에 대한 소명 의식마저 흐려지면서 속으로 이렇게 되뇌곤 합니다.

‘내가 잘 못해서 그래.’
‘이 모든 것이 내 탓이야.’
‘그 상황에서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회사 가기 싫다. 환자를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할 일을 하는 거고, 그러면 된 거지.’

사실,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의료진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으며,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에게서도 흔하게 듣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영향은 생각보다 큽니다. 육체적 피로 등의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물론이고, 업무 시 정서적 고갈에 따른 감정 배제, 집중 저하, 부정적 편향 등의 인지적인 증상과 제한적 대인관계 형성으로 이어지는 행동적 변화까지 이르게 됩니다. 결국 자신의 업무에서 자신이 소외되는 경험을 하게 되고, 이직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번아웃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마음챙김과 명상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울산광역시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제작한 <마음의 달인>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명상법과 참여자의 수준에 따른 중급자용 명상도 무료로 제공하니 이용해보면 좋겠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인지적 변화도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힘들었던 때를 떠올려보고, 당시 스스로를 어떻게 대했는지 되돌아봅니다. 특히 해로웠던 생각을 찾아내보십시오. 그 다음 아래 세 문장을 마음에 떠올려보기 바랍니다.

1 나쁜 일은 항상 일어난다.
2 모든 것은 변한다.
3 고정된 것은 없다.

이제 그 사건이 어떻게 다르게 인식되는지 다시 떠올려보세요. 일과 삶의 균형도 중요합니다. 특히, 내 인생에서 일과 가족의 가치를 각각 얼마나 두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실제로 자신이 투자하는 노력과 시간은 각 영역에서 얼마인지 따져보면 그 차이에 놀랄 수도 있을 겁니다. 취미나 관심사를 공유하는 동호회 활동도 번아웃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종종 환자들에게 큰일을 이루려면 작은 일들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루틴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운동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체 활동 실천율은 상당히 저조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운동은 엔도르핀을 만들고 행동 활성화를 통해 부정적 인지 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어 정서적으로도 이점이 큽니다. 운동은 한 번 할 때 45분 정도로 일주일에 3회 이상 하되, 노래를 부르기 힘든 정도의 강도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안 하는 것보다 소파에서 일어나 조금이나마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스마트 워치나 매일 활동을 기록해 주는 앱을 이용하면 일단 시작한 운동을 유지하는 데 제법 도움이 됩니다. 운동을 하기 싫을 때를 대비해 위기관리 대책을 마련해두면 좋습니다. 운동 다녀온 이후의 나를 생각하거나, 계획대로 운동했을 때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보상 체계를 만들어두면 어떨까요?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을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현재가 한없이 고통스럽고 벗어나고만 싶다면 어떻게 할까요? 부정적인 생각이나 감정 중에서 수치심, 자기비판, 죄책감을 구분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비판은 생각을 가리키는 반면, 수치심은 그 생각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일컫는 말입니다. 죄책감은 ‘내가 나쁜 짓을 했다’ 또는 ‘실수를 했다’는 행동에 대한 지칭인 반면, 수치심은 ‘나는 나쁘다’ 또는 ‘내 존재 자체가 실수다’라고 스스로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구분한 이후에는 자기비판을 멈추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자기 공감(Self-compassion)의 마음가짐은 개인의 감정적 웰빙을 증가시키고, 목표에서 벗어나는 일이 있어도 부정적 반응을 적게 만듭니다. 다음 세 가지 방법이 도움이 됩니다.

1 지금이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현재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자각한다.

2 고통은 삶의 일부다. 고통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다.

3 지금 이 순간 나 자신에게 친절하게 배려해도 될까? 자신이 고통 받거나 부족하다고 느낄 때 가혹하게 자기 비판적으로 대하기보다 스스로에게 친절과 이해로 대응한다.

이러한 자기 공감은 학습될 수 있으며, 위에서 설명한 마음챙김 기반 중재가 자기 공감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환자들을 만나다 보면 직무 스트레스가 쌓일 때 음주, 흡연, 폭식, 스마트폰 등으로 즉각적이고 손쉽게 해소하려고 시도하는 이가 많습니다. 물질이나 행위 중독 등의 보상적 추구는 자가 치료적 시도로 볼 수 있지만, 되레 우울과 불면, 소진을 악화시킬 수 있는 만큼 각자의 스트레스 대처 방법을 점검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과 같은 순기능적 직무 스트레스 대처법을 갖고 활용도를 늘리면 좋습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따뜻한 욕탕에 들어가거나 사우나를 하거나, 호수나 공원을 산책하는 방법입니다. 문득, <대학병원> 독자들만의 특별한 방법이 궁금해집니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미국의 정신분석학자 허버트 프루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는 마약 중독자 진료소에서 자원 봉사하던 임상가와 심리사들이 겪은 좌절감과 정서적 고갈, 환자들에 대한 헌신과 의욕 저하를 1974년에 최초로 기술했습니다. 번아웃 증후군의 기본 심리적 개념은 말라크(Maslach)와 잭슨(Jackson)이 구성했는데, 정서적 고갈, 이인감(depersonalization_자신이 낯설게 느껴지거나 자신과 분리된 느낌), 업무 효능감과 개인적 성취 저하를 3요소로 정의했습니다. 특히 심리적으로 완벽주의 성향을 가졌거나 경쟁적이거나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클수록 위험하다고 알려졌습니다.

번아웃의 영향

우울증을 예측하는 위험 요인이며 직업적 문제(생산성 저하, 업무 불만족, 이직), 신체 증상(당뇨, 이상지질혈증, 대사증후군, 관상동맥질환, 근육통, 두통, 만성 피로, 사고 및 조기 사망), 정신 증상(우울, 수면 장애, 정신 장애 입원)과의 관련성이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