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다가오는 설렘을 넘어설 만큼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 있을까. 마음껏 여행하고 일상의 자유를 찾는 시간이 돌아올 것만 같다. 아니, 그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기다릴 것이라 믿는다. 고래의 고향 장생포를 누비며 마음껏 뛰고 웃는 시간을 상상하니 어쩐지 두근거린다. 고요의 바다에서 고래가 뿜어내는 물줄기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에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한미영(여행작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며 카운트다운을 하는 건 해가 바뀌는 순간의 두근거림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두 눈에 담으려 애쓰는 건 새날의 희망을 맞이하려는 의지다.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아쉬움보다 새해를 맞이하는 설렘이 더 크다. 무료하고 무력한 흐름에 적응하기보다 다가올 희망의 시간을 설계하기 바쁘다.

사람들은 ‘코로나 끝나면’ 하면서 미루는 아쉬움을 ‘코로나 끝나면 뭘 할지’ 상상하는 즐거움으로 바꿔낸다. ‘코로나19 종식 후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나요?’라는 물음에 해외여행과 국내여행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2021 코로나19로 인한 생활패턴 변화 관련 조사, 2021년 4월, 트렌드모니터).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많이도 바꿔놓았고 영향력은 여전히 크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의 희망을 꺾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전설의 흰고래 ‘모비딕’의 전설을 배경으로 한 영화 <하트오브더씨 In the Heart of the Sea> 속 고래잡이 배에는 무료하고 무기력한 시간과 희망의 순간이 공존한다. 닻을 올리고 돛을 내려 출항하는 선원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다. 폭풍우와 한바탕 사투를 벌이고 겨우 생존했지만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후에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아차린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저 멀리에서 뿜어진 고래 물줄기를 발견하면 배를 가득 채워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다시 품는다. 결국 우리의 삶이란 한 줄기 희망을 품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리라.

서로 도우며 살아요

울산 장생포는 ‘고래의 고향’으로 불린다. 고래산업이 왕성했던 시절의 그곳은 희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고래가 떠난 지금은 고래 덕분에 살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의 마음이 남아 있다. 고래문화마을은 고래잡이 어촌의 모습을 재현했는데, 고래광장, 장생포옛마을, 고래조각정원, 수생 식물원 등 고래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고래에 대한 정보와 포경 유물을 보존·전시하는 장생포고래박물관, 돌고래수족관과 바다 생태를 전시하는 고래생태체험관 등이 ‘고래도시’를 이룬다.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고래관광을 즐길 수 있는 ‘고래바다여행선’도 운항한다. 고래도시에서의 시간여행은 사람과 고래가 함께 살던 시절의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코끝을 스치는 달콤한 달고나 향기,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 구령에 맞춰 살금살금 술래에게 다가가던 조마조마함, 꺄르르 웃으며 우다다다 골목길을 누비던 어린 시절 기억마저 소환한다. 그러고 보면 고래는 사람들에게 모든 걸 주었다.

최근에는 고래가 주로 기후변화, 해양환경 오염의 희생양으로 등장하지만, 사실 영리하고 따뜻한 동물이다. 공생하며 사는 동물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서로 도우며 살아요』의 돌고래 이야기만 봐도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돌고래는 지능이 높고 동정심이 많다. 무리 중에 몸이 약한 동료나 다친 동료가 있으면 곁에 머물면서 보살핀다. 힘들어하는 동료 밑에서 수영을 하며 여럿이 함께 동료를 수면 위로 올려 숨을 쉴 수 있게 한다. 누군가 아기를 낳을 때는 빙 둘러서 헤엄치면서 상어의 공격을 막아낸다. 자기와 같은 무리가 아니어도, 다른 종이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사람들과도 잘 어울려서 같이 있어 본 사람은 돌고래가 사람을 아주 좋아한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간혹 뜻대로 되지 않는 날이 닥쳐오더라도 배려하고 협력하는 고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좋겠다. 그리고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내며 수면 위로 솟구치는 고래를 떠올리며 새로운 희망으로 도약하기를 응원한다.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여행 정보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고래로 271-1
052-226-0980
www.whalecity.kr

여행작가 한미영은 여행 매거진 「뚜르드몽드」를 시작으로 건강 리빙 매거진 「월간헬스조선」, 부모와 아이 중심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맘앤앙팡」 에디터로 일했으며, 다수 매체에 건강, 여행, 인터뷰 칼럼을 기고했다. 조금 느려도 가치 중심의 윤리적 소비를 하는 편안한 삶을 꿈꾼다. 다양한 경험 속에서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는 건강한 사회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