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학과 서민정 교수

흔들림 없는 올곧음의 정석

자기 일을 진짜 사랑하는 이들에게서는 고귀한 아우라가 엿보인다. 울산대학교병원 핵의학과 서민정 교수가 꼭 그렇다. 그에게는 고비의 순간과 현재의 힘겨움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마침내 이루어내는 올곧음이 있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오랜 훈련 뒤 찾아온
달콤한 지금의 시간

울산대학교병원 핵의학과 서민정 교수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친 뒤 2015년 울산대학교병원 핵의학과로 옮겨 펠로우, 임상 조교수를 거쳐 현재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민정 교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줄곧 진로로 ‘의사’를 희망했었다. 아픈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사명감에 이끌려 의과대학에 지원했지만, 핵의학과 의사로 울산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6년간의 학업도 긴 시간이었지만, 인턴이 되어 임상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일하는 시간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슬프게도 제가 술기 등 몸으로 임해야 하는 분야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분야에서 이 단점을 커버하고, 그나마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졌고, 당시 지도교수이셨던 핵의학과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핵의학과에 지원했습니다. 힘든 수련 시간을 거치며 여러 현실적인 벽에 부딪혔지만 결국 핵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울산대학교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감사하고 기쁩니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종은 비록 근무 강도는 세지만, 아픈 환자들의 진단과 치료를 도울 수 있어 타 직종에 비해 보람을 느낀다. 현재 울산대학교병원의 진료 환경과 자신의 역할 등에 만족하는 서민정 교수 역시 날마다 이런 보람을 잊지 않고 누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핵의학과의 역할

서민정 교수는 핵의학과에서 일반 핵의학, 종양, 방사성요오드치료 등을 전문으로 진료한다. 먼저 핵의학과라는 진료과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서민정 교수는 핵의학과의 생소함에 대한 일화를 들려준다.

“핵의학과는 많은 이들이 생소하게 생각하는 과입니다. 일례로, 전공의 때 미국 보스턴 브리검여성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에 단기 연수를 가기 위해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면접을 봤습니다. 당시 면접관도 한국 의사가 ‘nuclear’ medicine(핵의학) 분야에 근무한다고 하니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서민정 교수는 핵의학과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하여 진단과 치료를 돕는다. 원하는 ‘표적’에 가는 리간드(Ligand)를 선택한 뒤, 여기에 적절한 에너지의 방사성동위원소를 붙여주면, 이 방사성의약품은 목표한 표적에 도달하여 에너지를 방출한다. 에너지가 낮은 감마선을 배출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하면 영상을 얻어 진단을, 더 높은 에너지의 알파선이나 베타선을 사용할 때는 치료를 도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뼈를 표적으로 하는 DPD라는 리간드에 감마선을 배출하는 Tc-99m을 표지하여 환자에게 주사하면, 환자의 뼈에서만 감마선이 방출되어 뼈 스캔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리간드를 선택하냐에 따라 원하는 기능만 선택적으로 영상화하거나 치료 표적으로 삼을 수 있어 흥미롭고 발전이 빠른 의학 분야입니다.”

연구를 대하는
핵의학과 의사의 태도

서민정 교수는 대학교수의 역할 중 하나인 ‘연구하는 일’에도 성실하게 임한다. 8년 전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미래창조과학부 주관 ‘2015 대한민국 과학기술 연차대회’에서 ‘파킨슨 환자의 SSRI(항우울제) 복용이 18F-FP-CIT PET/CT에 미치는 영향’으로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받았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는 18F-FSPG라는 방사성의약품으로 염증성 장 질환을 연구한 논문이다(PET Imaging of System xC - in Immune Cells for Assessment of Disease Activity in Mice and Patients with Inflammatory Bowel Disease). 먼저 전임상실험을 진행했는데, 새로운 PET(양전자방출전산화단층촬영)용 방사성의약품인 18F-FSPG를 이용하여 염증성 장 질환의 쥐 모델에서 영상을 얻고, 조직 검체의 염증성 변화와 비교했다. 그 후속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하여 궤양성 대장염과 크론병 환자의 18F-FSPG PET 영상을 얻고, 내시경 소견과 조직 검사 소견과 비교했다. 그는 이 연구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굉장히 오랜 기간 진행했고 어려운 고비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임상실험 때, 쥐 실험을 하려고 울산과 서울아산병원을 수없이 오가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자동차도 없던 뚜벅이가 동구에서 울산역–서울역-잠실나루역을 오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쥐들은 왜 그리 죽던지요. 여러 가지 기술적인 부분을 개선한 뒤에야 비로소 목표하던 영상과 조직 검체 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연구자로서 무지했던 제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던 시기였습니다.”

환자들에게 큰 도움 되고 싶어

서민정 교수는 만삭의 몸으로 전임상실험을 무사히 마무리했고, 감사하게도 바로 후속 연구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그가 첫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2대를 들고 입소해 모유 수유와 연구계획서 작성을 동시에 수행했던 연구다. 나중에는 조리원 측에 “그냥 단유하고 분유 먹여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니 그에게는 절대 잊히지 않는 시간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많은 걸 깨닫고 크게 성장했다.

“임상시험 진행에 참여해보니 제가 초짜 연구자임을 다시금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여러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임상시험이 무사히 마무리되고, 면역화학염색을 적절히 진행하는 데까지 역시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어느덧 둘째를 출산할 시기가 다가왔고, 두 번째 출산 휴가 역시 집에서 모니터를 붙잡고 엑셀 파일을 째려보며 보냈습니다. 이 연구는 두 번의 출산을 겪으면서도 전임상, 임상시험으로 이어지는 큰 주제의 연구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제게 무척 큰 의미입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제가 연구자로서 조금이나마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연구이기도 합니다.”

이 연구는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문대혁, 권미나, 예병덕 교수님이 공동연구팀을 만들어 진행했고, 연구 결과 논문은 용지수(IF) 11.082인 Journal of Nuclear Medicine, 2022년 63편 10권 p1586-1591에 게재되었으며, 10월호의 ‘Featured Translational Science Article(중개 과학 특집 논문)’로 선정되었다. 또한 국내 최고 바이오 관련 연구 정보 제공 커뮤니티로 평가받는 포항공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약칭 한빛사)’ 논문에도 선정되었다.

서민정 교수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핵의학은 새로운 방사성의약품을 이용한 진단과 치료법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현재의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역량을 키워나가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의사, 그리고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답했다. 그가 몸담은 울산대학교병원 핵의학과의 10년 뒤, 그리고 더 먼 미래까지도 짐작되는 대답이다. 그가 보여준 올곧음이라면 아픈 이들의 기댈 곳이 되어줄 것도 충분하고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