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립기획팀 김지혜 디자이너

어쩐지 근사한
디자이너의 생각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디자이너의 머릿속에서 태어난다. 울산대학교병원에는 ‘1호 디자이너’라고 불리는 김지혜 디자이너가 있다. 울산대학교병원 건립기획팀 김지혜 디자이너를 만나 그동안 궁금했던 디자이너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울산대학교병원 1호 디자이너

울산대학교병원 ‘1호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지혜 디자이너를 만나기 전 우리는 ‘디자인’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숱하게 들어왔지만 여전히 막연한 영역, 디자인(Design)이란 무엇일까.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어떤 상품의 패키지나 결과물이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디자인’의 사전적 정의는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주어진 목적 달성을 위해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이나 행위, 결과가 디자인이다. 인쇄물 관련된 편집 디자인부터 북커버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브랜드 디자인, 광고 디자인, 서체 디자인, 웹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영역은 광활하다. 우리를 둘러싼 거의 모든 영역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디자인은 그 어느 것보다 전문 영역이지만 의외로 기업에서 디자이너를 따로 채용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하지만 울산대학교병원은 3년 전 ‘울산대학교병원 1호 디자이너’를 채용했다. 김지혜 디자이너는 2020년 1월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사해 4년째 근무하고 있다. 그는 학부에서 시각디자인과 멀티미디어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박물관학, 전시기획·디자인을 전공했다. 울산대학교병원은 그의 네 번째 직장으로 이곳에 오기 전에도 그는 다양한 작업을 경험했다.

“출판·편집 디자이너로 잠시 근무했고, 석사학위를 딴 이후에는 미국에서 각종 박물관, 브랜드 체험관 등을 기획·디자인하는 회사에서 경험 디자이너(Experience Designer)로 근무했습니다. 울산에 정착해서는 울산과기원에서 한국연구재단의 과제로 창의과학융합전시를 기획·디자인하는 업무를 맡았었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은 김지혜 디자이너 이후 두 번째 디자이너까지 채용하며 디자인 업무의 고유 영역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은 건립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울산대학교병원에서 김지혜 디자이너의 첫 번째 근무 부서는 홍보팀이었다.

“처음에는 홍보팀으로 입사했어요. 홍보팀에서 그래픽 위주의 각종 홍보, 광고 디자인 업무와 더불어 타 부서에서 의뢰하는 다양한 디자인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점차 업무 영역이 확장되고 새 병원 건립이 이야기되고 있던 터라 지난해 11월에는 건립기획팀으로 자리를 옮겨 디자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신뢰감 있는 브랜딩

김지혜 디자이너가 울산대학교병원에 입사한 뒤 병원에는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디자인 작업은 병원 내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병원의 크고 작은 다양한 업무에 관해 디자인적 선택과 결정들이 필요한데, 그간 병원 내부에 이런 사항을 의논할 대상이 없어서 난감했던 것 같아요. 이제 의논할 대상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좋게 평가해주시는 듯합니다.”

김지혜 디자이너가 입사하면서 업무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울산대학교병원의 브랜드 디자인 확립과 브랜딩 적용에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는 신뢰감 있는 브랜딩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현재도 울산대학교병원에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그가 해온 노력은 지금 병원 곳곳에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한다.

“기존의 HI를 큰 틀에서 유지하되 우리 병원 환경에 맞춰 세부 항목들을 수정하고, 기존에 비일관적으로 사용하던 디자인 요소들을 정리해 체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작년에 진행했던 길 안내 사인물, 외래채혈실, 본관 주차장 개선 사업 등에 적용되면서 병원 직원은 물론 병원을 찾는 많은 사람이 변화를 가시적으로 느끼는 듯합니다.”

디자인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는 한둘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의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데커레이션을 떠올릴 테지만 김지혜 디자이너는 ‘사용자 인터뷰’를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로 꼽는다.

“디자인의 핵심 부분은 문제 해결입니다. 미학적이든 기능적이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디자인의 주요 목적입니다. 보통 사용자나 클라이언트는 부수적 현상에 매몰되어 진짜 원인은 간과한 채 제한적 아이디어나 해결책을 제시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사인물의 위치나 방향이 사람의 동선이나 시야에 걸리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인데, 단순히 색 변경이나, 글자 크기, 수량 등으로 해결하려 하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뿐입니다. 사용자 인터뷰는 이런 가짜 문제들 사이에 가려져 있던 진짜 문제를 찾는 핵심적인 과정입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

우리에게는 매일의 노동이 주어진다. 대가를 받는 노동이기에 때로는 스트레스가 따른다. 김지혜 디자이너의 노동에도 스트레스가 있지만 보람이 더 크다. 주어진 디자인 작업에 최선을 다하는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며 매 순간 보람과 성취를 느낀다고 한다. “노동하지 않으면 삶은 부패한다. 하지만 영혼 없는 노동은 삶을 질식시킨다”라는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말도 김지혜 디자이너의 말에 힘을 보탠다.

“사실 ‘1일 1보람’이라고 할 정도로 매 순간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 병원은 3천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매일 3천여 명이 넘는 환자가 찾는 곳입니다. 저는 6천여 명 사용자들의 반응을 유관 부서 선생님들에게서 전달받고, 저 역시 다음 업무에 참고하기 위해 자주 여쭤보는 편입니다. 작은 것도 크게 칭찬해주셔서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더 많은 부서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서는 업무뿐만 아니라 울산대학교병원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는 울산대학교병원을 장점과 가능성이 많은 조직이라고 소개하며 병원의 성장을 자신의 성장처럼 바란다.

“저도 근무하기 전에는 울산대학교병원이 이토록 괜찮은 병원인지 몰랐습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더욱더 울산대학교병원의 우수성을 알 수 있도록 병원의 위상에 맞는 외향과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디자인 면에서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관계자가 병원의 발전을 고민하는 만큼 앞으로 울산대학교병원이 한 단계 도약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비전인 ‘신뢰받고 자긍심을 가지는 병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를 희망합니다.”

그에게 꿈을 물었다. 어쩐지 화려하고 원대한 꿈을 말해줄 것 같던 그의 꿈은 오히려 소박하고 정겹다. ‘함께 일하기 믿음직한 동료가 되는 것.’ “디자인은 디자이너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여러 행정 부서, 사용 부서와 협업해 완성해가는 과정의 극히 일부분이 디자인입니다. 이 과정에서 업무할 때 기댈 수 있는 동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동료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자기 일, 즉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디자인에 자부심을 느끼는 김지혜 디자이너는 일과 일 사이에서 사람을 본다. 사람은 병원 직원이기도 하고, 병원을 찾는 환자 또는 보호자이기도 하다. 영혼에서 나오는 그의 디자인이 진짜 근사한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