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으로부터
겨우내 건강 사수하기

제가 일하는 약제팀은 병원 지하에 있어서 출근한 이후에는 퇴근할 때까지 바깥 날씨를 잊고 지냅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날씨를 느끼는 때가 있는데, 바로 독감약 처방이 늘어날 때입니다. 겨울이 와 공기가 차갑고 건조해지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유리해지기 때문입니다.

정희진(약제팀 약사)

독감, 감기와 다르다

흔히 독감을 ‘독한 감기’를 줄인 말로 생각하지만, 엄밀히 말해 독감과 감기는 다른 질환입니다. 감기는 주로 리노바이러스, 아데노바이러스가 원인이며 계절 구분 없이 인체의 방어력이 떨어지는 어느 시기에든 걸릴 수 있습니다. 콧물,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열은 미열 정도로 거의 없으며,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1~2주면 낫고 합병증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독감은 주로 가을이나 겨울에 걸리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입니다. ‘독감’과 ‘인플루엔자’라는 용어를 같은 뜻으로 혼용하기도 하죠. 감기 걸렸을 때 흔히 나타나는 콧물 등의 국소적인 증상보다는 발열, 근육통 등 전신 증상이 훨씬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또한 폐렴 등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특히 노약자에게 치명적입니다. 또한 감기약은 증상을 가라앉히는 목적이지만 이와 달리 독감약은 원인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억제합니다. 무엇보다 원인 바이러스가 뚜렷이 다르므로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해서 감기까지 예방할 수는 없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A, B, C형으로 나뉘는데, 같은 계통 안에서도 수많은 변이가 발생합니다. 우리 몸에 무언가 들어오면 방어물질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후에 똑같은 것이 다시 몸속에 들어오면 그 경험으로 전보다 훨씬 더 빨리, 더 강하게 방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예방주사의 원리입니다. 몸에 감염원을 조금 넣어 경험시키면 나중에 정말 감염원이 몸에 들어왔을 때 빠른 속도로 대응할 수 있죠. 어릴 때 맞는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 백신처럼 효과가 몇 년간 지속되는 백신도 있지만,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은 다릅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은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작년에 맞은 예방주사로 올해 유행하는 바이러스조차 효과적으로 막기 힘듭니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매년 전 세계의 바이러스 정보를 모아 그해에 유행할 바이러스 종류를 예측하고 그에 효과적인 백신을 만듭니다. 올해는 세계보건기구가 예측한 자료를 토대로 질병관리청에서 그 바이러스들을 예방할 수 있는 4가 백신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독감 예방접종 시기

독감 예방접종은 인플루엔자 유행 시기와 예방접종의 효과가 지속되는 시기를 고려해 매년 10~12월에 접종하도록 권장합니다. 올해는 9월 말부터 무료 예방접종이 시작되었고 내년 4월 말까지 국가 예방접종을 시행합니다. 인플루엔자 감염 시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생후 6개월 이상 13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 65세 이상 고령자 등은 무료 예방접종 대상입니다.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처음 한다면 4주 간격을 두고 2회 접종해야 하므로 9세 미만 어린이부터 시작해 연령대별로 순차적으로 예방접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만성 폐·심장·간·신장 질환자, 면역저하자 등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 고위험군과 자주 접촉하는 사람 또한 매년 독감이 유행하기 전에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방접종 후 바이러스를 방어할 힘이 생기려면 2주 정도 걸리기 때문입니다. 혹시 전에 독감백신을 맞은 후 6주 이내에 갑자기 다리 힘이 약해지거나 아픈 길랭-바레 증후군을 경험했다면 접종 전 의료진에게 꼭 이 사실을 알려주세요. 달걀에 중증 알레르기 반응을 겪었던 사람은 예전과 달리 백신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해 백신의 달걀 성분이 아주 적기 때문에 안심하고 접종하셔도 됩니다.

예방접종 후 건강한 생활 수칙 지키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보통 이틀간의 잠복기를 거친 후 증상이 나타납니다. 며칠간 발열 등 전신 증상이 나타나다가 1주일 정도면 호전되고 전염력도 사라집니다. 그동안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치료 약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약은 다양한 경로로 투여할 수 있는 여러 성분이 있습니다. 먹는 약 성분은 오셀타미비르(Oseltamivir), 흡입하는 약 성분은 자나미비르(Zanamivir), 주사 성분은 페라미비르(Peramivir)입니다. 오셀타미비르는 하루 2회씩 5일 동안 복용하고, 자나미비르는 흡입하는 기구를 사용해 1회에 2번씩 하루 2회 5일 동안 흡입합니다. 페라미비르는 딱 한 번 정맥주사를 맞으면 되어서 편하지만, 비급여라 가격이 비싸므로 약을 먹거나 흡입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주로 쓰입니다. 자나미비르는 기구를 사용해야 해서 불편하므로 대부분 먹는 약인 오셀타미비르를 투여합니다.

오셀타미비르의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증상이 처음 나타나거나, 독감 환자와 접촉한 지 48시간 안에 복용을 시작해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증식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습니다. 복용을 시작하면 12시간 간격으로 하루 2회, 5일 동안 총 10회 투여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약을 먹으면 증상이 빠르게 개선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 처방받은 약을 모두 먹어야 내성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12시간 간격으로 복용해야 하므로 식사 시간과 맞추기 어렵지만 음식과 상관있는 약이 아니므로 구역, 구토 등 증상을 느낀다면 음식과 함께 복용해 위장장애 증상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심각한 부작용으로는 이 약을 먹은 소아, 청소년 환자에게 경련과 섬망 등 이상 반응이 나타나고 추락 등 사고로 이어진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아직 인과관계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만일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적어도 복용 첫 이틀 동안은 보호자가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이상행동이 나타나는지 관찰해야 합니다.

제때 예방접종을 받고, 약을 잘 먹는 것뿐 아니라 건강한 생활 수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가습기 등으로 생활 공간의 습도를 높이면, 가래를 잘 뱉을 수 있고 건조한 환경을 좋아하는 바이러스의 증식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독감 환자가 기침이나 재채기할 때 퍼지므로 한창 코로나19가 유행할 때처럼 손을 씻고 마스크를 끼면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을 수 있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겨울을 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