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복용 시
주의해야 할 음식

음식은 약 복용 시 가장 신경 쓰고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약과 음식은 각각의 성질에 따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쳐 약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약 복용 시 주의해야 할 음식을 알아보자.

정희진(약제팀 약사)

음식에 관한 관심이 여러모로 점점 커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어릴 때는 ‘맛집’을 찾아간다는 개념이 없었고, 일반인이 단백질 같은 특수한 음식을 챙겨 먹으며 보디 프로필을 찍는 일도 드물었지요. 요즘은 ‘먹고 살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심신 건강한 삶을 위해 찾아 먹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된 듯합니다. 특정 음식이 몸 어디에 좋다는 내용의 방송도 꾸준히 인기죠. 제가 일하면서도 약을 처음 처방받거나 수술한 환자들에게서 많이 받는 질문이 음식입니다. 약도 음식도 몸 안에 흡수되며 인체에 효과를 나타냅니다. 그 둘의 성질에 따라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흡수, 분포, 대사, 배설과정을 변화시켜 효과가 떨어지거나 과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약은 물 외의 음료와 복용해도 될까

대부분 삼키는 약은 물과 먹어야 합니다. 녹여 먹는 약, 주스나 요구르트와 먹는 약도 있지만 몇몇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 물과 먹습니다. 제약회사에서는 약을 만들어 그 효능을 실험한 후 ‘물에 녹였을 때 ○분 안에 모두 녹는다’, ‘물에 ○mg을 녹였을 때 몸속에서 이만큼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결과를 나라에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 약을 출시합니다. 그러니 약을 물 외의 음료와 함께 먹었을 때의 효과를 증빙하는 자료 자체가 없죠. 커피나 술은 몸에 안 좋다는 인식이 많아서인지 약과 먹는 일이 드문데, 주스나 우유와 함께 먹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약을 먹을 때 는 아니어도 복용 전후에 마시는 일은 흔할 듯합니다.

하지만 우유의 칼슘은 일부 항생제나 항진균제 성분과 붙어서 몸에 흡수되는 걸 방해합니다. 그리고 우유를 마시면 위의 산성도가 변해서, 장에서 녹아야 할 변비약이 위에서 녹아버릴 수 있습니다. 대장에서 작용해야 하는데 엉뚱한 위를 자극해 변비 해소 효과 대신 위장장애 부작용을 겪을 수 있죠. 과일 주스도 산성 성질 때문에 약의 흡수를 방해합니다. 특히 제산제나 항생제, 항히스타민제 등을 복용할 땐 앞뒤로 시간을 두고 주스를 드시는 게 좋습니다.

약 복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자몽’

약과 상호작용이 있는 음식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은 자몽입니다. 자몽은 약이 대사되지 못하게 방해해서 약이 몸속에서 분해되지 않고 엄청나게 높은 농도로 계속 머물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자몽을 먹으면 약을 조금만 먹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약을 대사하는 능력도, 그 대사능력을 방해하는 자몽에 받는 영향의 정도도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몽을 어느 정도 먹으면 약을 어느 정도 덜 먹어도 되겠다’고 예측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측한다고 하더라도 약을 먹는 동안 자몽을 일정하게 꾸준히 먹기도 힘든 일이고요. 그래서 일부 면역억제제, 고혈압 약을 드시는 동안에는 자몽이나 자몽 주스 등 자몽과 관련 식품은 피하라고 안내합니다. 하지만 모든 약에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니 확인해봐야 합니다.

식사 시간 기준으로 복용하는 약

복용 시간이 식사 기준으로 정확히 지정된 약들이 있습니다. 음식과 동시에 복용하라는 약, 공복에 복용하라는 약이 그 예입니다. 음식과 동시에 복용하라는 약은 위장장애가 심해서 음식과 같이 복용해야 부작용이 줄어들거나, 음식과 함께 복용하지 않으면 효과 자체가 무의미한 약입니다. 대표적으로 인 결합제는 음식에 있는 인과 붙어야 하므로 음식과 동시에 복용하지 않으면 이미 음식 속의 인이 흡수되었기 때문에 약의 효과를 누릴 수 없죠. 그리고 공복에 복용하라는 약은 음식 먹기 1시간 전까지, 혹은 음식을 먹고 2시간 후부터 먹으라는 뜻입니다. 약 복용 후 바로 음식을 먹으면 공복 상태에 약을 먹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어떤 음식과 간격을 띄워서 약을 복용하세요’라고 안내받았다면 앞에서 알려드린 대로 드시면 됩니다. 공복에 약을 먹으라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중 지방처럼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있는 성분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피해야 할 음식 몇 가지를 지정하기 어려워 모든 음식을 피해야 하는 약이거나, 음식을 먹기 전후 흡수율이 확연히 달라지는 약이 대부분입니다. 대표적으로 갑상선기능저하증 약은 음식과 먹으면 흡수가 잘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 공복 복용으로 처방됩니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약과 음식 상호작용을 피하는 복약안내서>를 발간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무료로 전체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천식, 통풍, 골다공증, 심혈관계 질환,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질환별로 잘 정리되어 있으니 복용하는 약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찾아보면 좋습니다. 보다가 내용에 의문이 생기면 주위의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세요.

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많은 작용이 나타나므로 조금 드신다면 약과의 상호작용이 크게 유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상호작용이 있는 음식을 먹더라도, 약과 먹는 시간을 띄우거나 적게 드신다면 약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즙이나 환 등은 다릅니다. 특정 재료를 아주 많이 응축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한 포나 몇 알만 복용해도 약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이럴 땐 꼭 그 재료가 약에 미치는 영향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음식이 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음식에 너무 신경 쓰다가 막상 약을 복용할 때 지켜야 할 더욱 중요한 점을 지키지 못하면 안 되므로 어디까지 안내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여러 약을 동시에 복용한다면 약 하나당 주의사항이 여러 개고 심지어 그 주의사항끼리 반대되는 내용이 있다면 다 기억하기도, 지키기도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혹시 복용하는 약들 각각의 주의사항을 함께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음식량을 줄이거나 약 복용 시간을 조절하는 등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혼자 고민하지 말고 꼭 전문가와 상담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