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청소년과 이경연 교수

유연한 태도가 된 깊은 마음

우리는 어떤 의사가 우리에게 좋은지 이미 알고 있다. ‘좋은 의사’다. ‘좋다’라는 단어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있지만, 소아청소년과 의사라면 분명해진다. 작은 환자를 향한, 또 환자의 건강을 누구보다 염려하는 보호자를 향한 진심 가득한 의사다. 울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이경연 교수를 만났다.

편집부 / 사진 송인호(스튜디오100)

우수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으로 인정받다

소아청소년과 이경연 교수는 단국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 서울대학교 어린이 병원에서 전임의를 하고, 청주성모병원에서 4년간의 봉직의를 거쳐 2009년부터 울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하고 있다. 더불어 울산대학교병원 아동보호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동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책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 이경연 교수는 울산대학교병원 아동보호위원회가 생기기까지 히스토리를 들려준다.

“의료진은 진료 현장에서 아동학대 환자를 접할 기회가 많을 뿐만 아니라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 아동학대 신고자 가운데 의료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 미만입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아동학대에 대한 의료인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고취하고자, 2020년에 전국 285개소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을 선정했습니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선정된 의료기관마저도 아동학대 신고율이 매우 저조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2022년 4월부터 국가사업비를 들여 전국 8개 시도별 의료기관을 광역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으로 선정하고 각 해당 지자체와 함께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 활성화 시범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도 2022년부터 울산시 아동학대 광역 전담의료기관으로 선정되어, 병원 내 아동보호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울산대학교병원 아동보호위원회에서는 피해 아동에 대한 24시간 긴급 대응체계구축, 피해 아동에 대한 의학적 진단 및 치료, 고난도 학대 사례 판단·자문, 지역내 의료기관 및 아동학대 관계기관(울산시 지자체,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과 협력체계 구축, 학대 사례 수사·조사 협조, 지역 전담의료기관 교육 및 간담회 주최 등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병원 아동학대 관련 업무의 공식 창구인 울산대학교병원 아동보호위원회는 10개 진료과 11명의 의사 위원과 변호사 1명 등 분야별 전문가 총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울산대학교병원은 광역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으로서 학대 피해 아동 의료지원 및 관계기관과의 협력 성과를 인정받아 2022년 12월, 보건복지부와 아동권리보장원으로부터 서울대학교병원과 함께 우수 아동학대 전담의료기관으로 선정됐다. 이경연 교수는 아동학대위원장으로서 당부의 말을 건넨다.

“요즘 출생 미신고 영아 살해사건이 수십 건이나 밝혀지면서 전국적으로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면을 빌어, 울산대학교병원 직원들이 아동학대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신고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아동학대 신고는 112로 하면 되고, 학대인지 확실하지 않아 주저하게 될 때는 아동보호위원회로 연락하시면 자세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소아 신경 질환,
꾸준한 진료와 치료가 중요하다

이경연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진료에도 늘 열과 성을 다한다. 그는 소아청소년과에서 뇌전증, 뇌염, 두통 등 소아 신경 분야를 전문으로 진료한다. 따라서 뇌, 척수 및 말초 신경계, 근육 등에 발생하는 다양한 질환의 환자들과 만난다. 소아·청소년 시기에 가장 발생 빈도가 높은 질환은 뇌전증과 두통이라고 한다. 그는 이런 질환을 앓는 소아·청소년 환자를 위해 치료법에 관해 설명한다.

“보통 뇌전증은 특별한 이유 없이 경련이 두 차례 이상 발생할 때 진단하며, 뇌파 검사 및 뇌 MRI 검사 등을 시행해 진단합니다. 경련은 뇌의 비정상적인 과도한 흥분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신체 증상을 의미하는데, 뇌전증은 이런 경련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만성 질환입니다. 따라서 만성 질환인 뇌전증을 치료하려면 최소 2~3년 이상 장기적으로 항경련제 약물치료를 해야 합니다. 항경련제는 경련의 근본 원인을 치료하는 것은 아니며, 경련 증상을 억제하는 목적입니다. 이렇게 경련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년 이상 약물치료를 유지하면, 상당수 환자에서 약물 중단 후에도 경련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되기도 합니다. 뇌전증이 완치됐는지 판정받고 싶어 하는 환자도 있는데요, 통상적으로 10년간 경련이 생기지 않으면 완치됐다고 평가합니다. 단, 10년 중 최소 5년은 항경련제 약물치료를 중단하고도 경련이 발생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경연 교수는 특히 소아 뇌전증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아이의 경련 때문에 병원을 찾은 어머니들은 외래 진료실에서 의사가 “아이 병의 진단은 뇌전증 같습니다”라고 설명하는 순간 많은 경우 울음을 터뜨린다고 한다. 그는 보호자들에게 뇌전증은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꼭 절망스러운 병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동반 장애가 없고 뇌 MRI에서 병변이 발견되지 않는 소아 뇌전증은 완치되는 사례가 많습니다. 다만, 수년간 지속적인 약물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환이므로 전문 의료진의 진료를 꾸준히 잘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흔히 뇌전증 약물 부작용을 걱정하는데, 실제 약물 복용 후 눈에 띄는 이상 반응이 나타나는 환자는 드물고, 만일 발생하더라도 일시적이거나 다른 약제로 변경하면 대부분 사라지므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부작용이 의심되거나 걱정된다면 담당 진료 선생님과 상의하면 됩니다.”

덧붙여 그는 뇌전증 환자 중 상당수에서 우울증, 불안장애, 주의력결핍장애, 과잉행동장애, 학습장애, 수면장애 등 정신 질환이 동반되는데, 소아·청소년 뇌전증 환자도 예외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동반 증상은 아이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뇌전증 자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뇌전증 약물치료와 별개로 병행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의술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

이경연 교수는 의사로서 다른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병 때문에 아파하던 환자가 진료받고 건강해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 있고 기쁘다. 전문 진료 분야가 소아신경학인 만큼 만성 질환 환자도 많은데, 어릴 적부터 진료하던 환자가 자라서 대학에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는 것을 볼 때 그는 감회가 새롭다. 중학생 때부터 뇌전증으로 그에게 외래 진료를 받던 환자는 건강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호텔의 요리사가 되어 결혼할 여자친구와 함께 먼 지방에서 인사하러 찾아왔던 일도 있다.

짧지 않은 세월 소아청소년과 의사로서 진료하고 있지만 여전히 매 순간이 쉽지 않다. 특히 의사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뜻을 고집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제 외래에서는 뇌전증 치료 약물 처방이 많은데,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많은 부모님이 약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환자 보호자들이 “이 약 먹고 아이가 이상해지는 거 아니죠?”라고 묻습니다. 게다가 약물 치료 중에 임의로 약을 중단하거나, 하루에 두 번 먹여야 하는 약을 한 번만 복용하게 하기도 합니다. 처방 약물 중 임의로 어떤 약을 빼고 먹이는 사례도 흔합니다.”

처음 울산대학교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는 이럴 때 목소리를 높여 설득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가능하면 보호자의 의견을 꺾지 않고 허용하는 다소 유연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보호자 의견이 바뀔 수 있고, 그때는 비로소 의사 의견을 듣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아주 간혹 부모님 뜻대로 약을 먹였는데 실제 몇 년 동안 경련을 안 하고 잘 지내는 아이도 있습니다. 제가 젊은 의사 시절 스승님께서 ‘의술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럴 때는 ‘환자와 보호자를 과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의 마음으로 진료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지기를

출산율 감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부족 등의 이슈로 소란한 요즘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에 도전하는 젊은 의사가 많지 않은 현실에 의료계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 우려가 크다. 이는 이경연 교수와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소아청소년과를 희망하는 후배들이 많아지길 바라며 진심 깃든 조언을 건넨다.

“최근 수년간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는 전공의 수가 매우 적은 상황인데요, 선배로서 후배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진로 선택에서 너무 유행을 좇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오히려 이때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하면 앞으로 예상치 못한 수혜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예로서, 소아청소년과는 어떻게든 존속되어야 하는 필수 진료과인데, 현재처럼 전공의 부족 사태가 5년 정도 지속된다고 가정한다면 30~40대 초반의 젊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테고, 결국 지금은 경쟁해야 하는 자리나 위치를 채울 인력도 부족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했을 때 그런 자리를 골라서 선택할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겁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것 같아 망설인다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도전하길 권합니다.”

소아청소년과 과장을 맡고 있는 이경연 교수는 먼저 전공의를 비롯한 충분한 의료진이 확보돼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정상화되는 것을 당장 바람으로 꼽는다. 앞으로는 울산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가 울산 지역 소아·청소년들에게 신뢰할만한 수준 높은 진료를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아동보호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그는 울산시 지역사회와 꾸준히 협조해, 아동학대 예방과 피해 아동에 대한 적절하고 신속한 대처가 잘 이루어지게 하여 지역사회 아동복지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또한 그는 연구원과 같이 진행하는 염증성 뇌 질환의 실험실 연구가 올해 안에 좋은 결과를 내어 논문을 내고 후속 연구를 계속 진행하기를 바란다.

이경연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 후, ‘이경연’이라는 인물을 짧은 인터뷰 글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랗다 못해 초록색이 된 깊은 물 속을 들여다보다가 돌연 그 깊이를 깨닫듯 그의 속은 깊고 또 넓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