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비약,
성분 알고 준비해요

생활하다 보면 예기치 못하게 아픈 순간이 있다. 하지만 당장 병원에 가기 힘든 상황일 때면 손 닿는 곳에 항상 있는 상비약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수많은 일반 약 중 무엇을 상비약으로 갖춰야 하는지 알아보고, 또 가정에 흔히 있는 약은 어떻게 복용해야 적절한지 알아보자.

정희진(약제팀 약사)

복용 전 꼭 확인해야 하는 사항

‘열나는데 왜 진통제를 먹어야 해요?’라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해열제와 진통제 모두 열을 내릴 수 있으므로 사실이 두 가지는 각각 따로인 게 아니라 같은 약입니다.

진통제는 두 가지 종류이며 진통 효과와 함께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각기 다릅니다. 하나는 열을 내릴 수 있는 ‘아세트아미노펜’, 나머지 하나는 열뿐 아니라 염증도 가라앉힐 수 있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이하 NSAIDs)’입니다. 그러므로 해열 목적이라면 아세트아미노펜을 먼저, 목이 잠기는 등 염증 증상이 있다면 NSAIDs를 먼저 먹는 것이 좋습니다. 약을 먹은 뒤에도 증상이 가라앉지 않으면 다른 약을 교차로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효가 나타나는 시간이 필요하므로 다른 약 복용 전 최소한 2시간은 기다려야 합니다. 아세트아미노펜끼리는 4시간 이상, NSAIDs끼리는 6시간 이상 복용 간격을 띄워야 하고, 나이와 체중에 따른 1회 복용량을 정확히 지킨다면 아세트아미노펜은 하루 최대 6번까지, NSAIDs는 4번까지 먹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1회 복용량이나 하루 최대 복용량은 나이나 체중에 따라 다르므로 복용 전 꼭 확인해야 합니다.

약 이름 아닌 성분 봐야 한다

‘아세트아미노펜’을 성분으로 하는 약은 아주 많아서, 국내에 아세트아미노펜으로만 이루어진 약이 100여 종이나 됩니다. 그래서 약 이름만 보고는 성분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성분이 아세트아미노펜인 약 이름 중 널리 알려진 것은 타이레놀, 세토펜 등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 타이레놀 한 통 있는데 안 들을 수도 있으니 다른 것도 사놔야지, 세토펜을 사 놓을까?’라고 생각하면 타이레놀 두 통을 사 놓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름이 다르지만 성분은 똑같은 약이 많으므로 약을 구매할 때는 약 이름이 아닌 성분을 봐야 합니다. 특히나 아세트아미노펜은 종합감기약 등 여러 약에 포함된 경우가 많아서, ‘진통제랑 감기약은 다른 거지’라고 생각해 모두 복용하면 하루 적정 복용량보다 더 많이 먹게 될 수 있으니 더욱 주의해야 합니다. 심지어 아세트아미노펜은 먹는 약뿐 아니라 좌약으로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각기 다른 약이라고 생각하고 시럽과 알약을 먹고 좌약을 썼는데 알고 보니 모두 아세트아미노펜이었던 일도 왕왕 있습니다.

일반 약으로 분류된 진통제 중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 외의 성분은 모두 NSAIDs입니다. NSAIDs에는 부프로펜(Ibuprofen), 맥시부펜(Maxibufen), 나프록센(Naproxen) 등이 있는데 모두 외우기는 어려우니 진통제의 성분을 볼 때는 ‘아세트아미노펜’과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닌 것’으로 구분하면 충분하며, 각 성분에 해당하는 약 한 가지씩만 갖춰놓으면 됩니다. 여러 성분이 포함된 약은 복용 시 신경 쓸 것이 많아지니, 여러 목적으로 쓰일 상비약으로는 단일 성분으로만 된 약을 준비해놓는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 있는 여러 진통제 중 A 약의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 B 약의 성분은 이부프로펜, C 약의 성분은 맥시부펜이라면, 진통제는 무조건 아세트아미노펜과(A 약),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닌 것(B와 C 약) 두 가지로 분류하고, ‘만약 B와 C 약을 같이 먹으면 다른 진통제를 먹는 게 아니라 한 가지 진통제를 먹은 효과와 같으니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B 약을 먹고 효과가 좋았다면, 그 후 상비약을 준비할 땐 B 약의 성분인 이부프로펜을 준비해두면 되겠죠.

아세트아미노펜과 NSAIDs, 두 가지 모두 통증과 발열 및 염증을 일으키는 물질을 감소시켜서 통증과 열을 낮춥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뇌와 척수에서 작용하는 반면, NSAIDs는 그 외의 부분에서도 작용해 아세트아미노펜과 달리 염증도 가라앉힐 수 있습니다. NSAIDs가 작용하는 ‘그 외 부분’에 위장이 포함되는데, 이 약이 감소시키는 프로스타글란딘이 위장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므로 NSAIDs를 먹으면 속 쓰림 등 위장장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 위장이 약하다면 음식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이러한 부작용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세트아미노펜에는 간 독성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이는 간 질환이 있거나 알코올 중독 병력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내용이지, 그 외의 일반인이 정상 용량을 사용한다면 뚜렷한 부작용은 없습니다. 그래서 아기에게도 생후 4개월부터 투여할 수 있는 약입니다.

복용 후 30분 정도는 기다려야

간혹 증상을 빨리 가라앉히고 싶어서 많은 양을 복용하거나 먹자마자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다며 권장 복용 간격을 지키지 않고 연달아서 먹기도 하는데, 이러면 약효보다는 부작용이 생길 위험이 커지므로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약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30분 정도는 지나야 약효가 나타납니다. 만약 급하다면 같은 성분이라도 효과가 더 빨리 나타나는 연질캡슐(말랑말랑한 캡슐 안에 액체로 된 약이 든 것) 형태로 만들어진 약을 추천합니다.

약은 무조건 좋지 않다는 생각으로 그저 통증을 참는 사람이 있는데, 통증을 계속 참으면 신경이 손상되어 나중에는 원래 있던 통증의 원인이 사라져도 손상된 신경 때문에 계속해서 아플 수 있습니다. 결국 만성적으로 통증이 이어질 수 있고 그만큼 치료가 힘들어집니다. 통증이 있을 때는 참지 말고 약을 복용하세요. 진통제는 내성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기는 열이 나면 위험하다며 보호자들이 알맞은 1회 복용량이나 복용 횟수를 무시하고 약을 많이 먹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약으로 낮출 수 있는 체온은 많아야 1.5℃입니다. 열이나 통증은 그 자체가 병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어 부차적으로 생기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상비약을 복용했는데도 조절되지 않으면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