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슬픔을 위로하는 문장들

삶에서 슬픔과 마주할 때가 있다. 특히 사별이나 이별 등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상실의 슬픔은 인생에서 겪는 가장 아픈 사건이다. 슬픔은 누구에게나 다루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다행인 것은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다음 문장들을 가만히 음미해보자. 행간에서 위로를 얻을 것이다.

정리 편집부

01

누구나 슬퍼할 권리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크고 작은 상실을 경험하고 살아간다. 인생에 찾아온 상실은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고, 깊은 고통을 경험하게 한다. 슬픔의 고통을 깊은 곳에 꾹꾹 눌러 담아둔 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못하는 비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쌓인 좋지 못한 감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쩌면 나와 주변 사람을 해칠는지도 모른다. 감정을 밖으로 꺼내 표현해야 한다. 울음은 슬픔이 가진 최고의 표현 방법이다. 얼마든지 눈물을 흘려도 좋다. 충분히 울고 난 뒤에는 비로소 슬픔에서 조금은 벗어난 해방감을 경험할 것이다. 밖으로 감정을 빼낼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통과하는 것이다.

02

슬픔은 그리움이 된다

김훈 작가는 『자전거 여행』에서 시간의 힘에 기대어 더 이상 울지 않게 된 상황을 말한다. 슬픔이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슬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그리움이라는 애틋한 감정으로 표정을 달리한 것이다. 슬픔을 극복하는 데 가장 좋은 약은 시간이다. 성실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슬픔은 옅어지고, 고통이 덜어진다. 그리고 좋은 기억만 남아 그리움이라는 절절한 감정으로 승화될 것이다.

03

몰입할 무엇을 찾아서

충분히 슬퍼했다면 슬픔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우리가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남아있는 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를 지지해주는 환경에 둬야 한다. 또 몰두할 만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거나,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찾아도 좋다. 상실과 관계없는 다른 활동을 하는 사이 슬픔은 어느 틈에 옅어지고 정상 감각을 되찾을 수 있다.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고, 당신이 슬퍼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찾으세요. 당신이 잃어버린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은 피해요. 이런 사람들은 당신이 느끼는 상실을 사소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상실과 비교하거나 곧 익숙해질 거라고 말하죠. 많은 것이 당신에게서 사라지고 있을 때 아무도 이 사실을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상실은 당신 경험의 일부이고, 당신에겐 슬퍼할 권리가 있어요. 질병은 삶의 모든 부분이 상실조차, 경험할 가치가 있다는 점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제대로 슬퍼하는 일은 당신이 잃어버린 것을 소중히 하는 일과도 같아요. 상실감마저 소중히 여길 때 삶 자체를 소중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당신은 다시 살기 시작할 거예요.”

- 아서 프랭크(Arthur Frank),
'아픈 몸을 살다' (봄날의책)

“전 그 울음을 통해 기를 쓰고 꾸민 자신으로부터 비로소 놓여난 것 같은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러고 나서 요 며칠 동안은 우는 낙으로 살고 있죠. 이제부터 울고 싶을 때 울면서 살 거예요. 떠내려갈 거 있으면 다 떠내려가라죠 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꾸미는 짓도 안 할 거고요.”

- 박완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문학동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는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 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우리 남매가 더 이상 울지 않은 세월에도 새로 들어온 무덤에서는 사람들이 울었다. 이제는 울지 않는 자들과 새로 울기 시작한 자들 사이에서 봄마다 풀들은 푸르게 빛났다.”

- 김훈,
'자전거 여행' (문학동네)

“슬픔이 닥쳤을 때는 사방을 돌아봐도 막막할 뿐이다. 땅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 들어서 한 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두 눈을 지니고 있어 조금이나마 글자를 알고 있으므로, 손에 한 권의 책을 든 채 마음을 달래고 있노라면 무너진 마음이 약간이라도 안정이 된다. 만약 나의 눈이 비록 오색을 볼 수 있다고 해도, 책을 마주하고서 마치 깜깜한 밤처럼 까막눈이었다면 장차 어떻게 마음을 다스렸을까.

- 이덕무,
'문장의 온도' (다산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