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의 기쁨

김민정

어김없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무기력과 강박 사이, 고독함 또는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혀서 방황하는 나날들이 한겨울 이즈음에서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나이 한 살 더 얹는 것이야 익숙해졌다고 하더라도 이즈음이면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침잠된 느낌에 사로잡히고 만다. 굽이굽이 희로애락(喜怒哀樂) 이어지는 것이 삶이 가진 성질이라지만 이 얄팍하고 옹졸한 인간은 좋지 못한 감정과 상황 앞에서 하늘을 향해 분통을 터트린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평소 좋아하는 시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굳이 오랜 시를 꺼내 읽는 까닭은 ‘나’를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토록 가라앉은 스스로가 밉고 덩달아 일상까지 어두워졌지만 또 하염없이 가여운 나를 저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서 건져내어 웃게 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를 행복하고 기쁘게, 쨍하고 볕든 것처럼 구겨짐 하나 없이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 그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를 기쁘게, 밝고 환하게 만들 수 있는 건,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달렸다는 진리를 깨치는데 그리 오래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번에는 ‘시’가 아닌 ‘기쁨 리스트’를 꺼낸다. 언젠가 과거의 어두웠던 날에 펜으로 꾹꾹 눌러 써 놓은 리스트.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럴 줄 알고 많이도 써뒀네.’ 항목 중에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 먹기, 뜨거운 물로 샤워하기, 친한 친구에게 전화 걸어 농담하기, 향긋한 커피 한 잔 마시며 잠시 여유 갖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등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기쁨이 가득하다. 압도적인 크기의 질식할 만한 대단한 기쁨은 지금 당장, 내 힘으로 구현이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므로 일단 이것부터 차근차근 실천하기로 한다.

지난해 방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는 이런 대사가 나왔다. “5분만, 5분만 행복해요. 내가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줬을 때 고맙다고 말해주면 3초 기분 좋고, 지나가던 아이의 미소를 보면 다시 5초, 그렇게 차곡차곡 조금씩 5분만 행복하기로 해요.”

그렇다. 매일이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지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이런 기쁨은 아주 작아서,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 짧다 치더라고 이들이 전부가 되어 나의 오늘은 ‘기쁜 하루’가 될 것이다. 기쁨의 순간을 차곡차곡 쌓아 기쁜 삶, 기쁜 인생으로 만드는 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리라.

올해는 반복되는 하루 안에서 기쁨 찾기 놀이를 하고 싶다. 올해는 기쁨의 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의 기쁨을 찾아 마음껏 누리는 것이다. 길가에 핀 들꽃을 보며 한 번 웃는 나이길,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에 반려견과 낮잠을 즐기며 빙그레 웃는 그대이길, 아기 재워놓고 육아 퇴근 후 유튜브를 몰아보며 기쁨의 순간을 만끽하는 당신이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2023년, 우리에게는 기쁜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글을 쓴 김민정 작가는 여성지 <여성조선>을 시작으로 <레이디경향> 기자로 일했으며, 건강 리빙 잡지 <월간 헬스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다수 매체에 건강, 환경, 인터뷰 등을 기고한다. 60세까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 후에는 경제적 약자인 고령자나 결식아동에게 끼니를 배달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